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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내 잘못이로소이다

입력
2015.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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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데 임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임금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한다. 그런데 왕조국가에서 임금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임금이 잘못했다고 감옥에 가두거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임금이 잘못했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임금 스스로가 잘못을 빌어야 하는데, 이를 ‘죄기조(罪己詔)’라고 한다. 자신의 죄를 밝히는 조서라는 뜻인데, 자신의 죄를 자책한다는 뜻에서 ‘책기조(責己詔)’, 자신의 죄를 반성한다는 뜻에서 ‘수성조(修省詔)’라고도 한다. ‘죄기조’는 정치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임금은 재해가 발생하면 ‘죄기조’를 발표했다. 하늘이 자신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라고 정사를 위임했는데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면 이를 견책하기 위해 재해를 내린다는 사상에 따른 것이다. 이를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라고 하는데, 서기 전 2세기 경 한(漢)나라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체계화한 이론이다. 재해는 임금에 대한 하늘의 견책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견책했는데도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빌지 않으면 하늘은 천명을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 다시 말해 임금이 자책하지 않으면 임금이나 왕조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역성혁명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기조’는 임금의 잘못된 정치행위에 분노한 백성들이 임금이나 왕조 교체로 나아가는 혁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일찍이 ‘책기조’를 발표한 임금은 동이족 국가 은(殷)나라의 첫 임금 탕왕(湯王)이다. 서기 전 16세기 경의 임금인데 여씨춘추(呂氏春秋) ‘순민(順民)’조에 따르면 7년 동안 가뭄이 들자 탕왕은 자신의 정치 잘못이라고 여겨서 상림(桑林)에 나가서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자르고 자책하면서 비를 빌었다. ‘죄기조’는 “송구하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면 효과가 없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탕왕은 ‘자신의 정치가 고르지 못했는가, 백성들이 직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지나치게 높고 화려한가, 여알(女謁ㆍ측근의 청탁)이 행해졌는가, 뇌물이 행해졌는가, 참소하는 자가 창성했는가’라는 여섯 가지 일로 자책했다. 자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공자가 쓴 춘추(春秋)의 주(周) 장공(莊公) 11년조(서기 전 686)에 “가을에 송나라에 홍수가 났다(秋, 宋大水)”는 짤막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 대해 공자와 동시대의 사람인 좌구명(左丘明)이 춘추좌전(春秋左傳)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주나라 장공이 사자를 보내 “하늘이 음우(淫雨)를 내려 곡식을 해쳤으니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위로했다. 송나라 군주는 “고(孤ㆍ제후의 자칭)가 공경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렸습니다. 또 이로써 군주께 걱정을 끼쳐서 고마운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다.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장문중(臧文仲)이 이 말을 듣고 “송나라는 일어날 것이다. 우(禹)임금과 탕(湯)임금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니 나라가 흥성했고, 걸(桀)임금과 주(紂)임금이 모든 것을 남의 죄로 돌리니 나라가 멸망했다”(춘추좌전 장공 11년)라고 말했다. 그래서 중국의 역대 임금들은 나라에 큰 일이 발생했을 때마다 ‘죄기조’를 발표했는데, 고려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의 효종은 가뭄 때문에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던 임금이었다. 효종 3년(1652) 봄과 초여름에도 가뭄이 심했다. 효종실록에 따르면 그 해 4월 27일 효종은 남교(南郊)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자 그 다음날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그래서 효종의 대군 시절 사부였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임진년 4월 28일에 비가 온 것을 기뻐하다(壬辰四月二十八日喜雨)’라는 시로 이를 읊었다. “어제 임금께서 상림(桑林)에서 옥체를 수고하셨으니/이 병든 신하는 밤새 하늘을 바라보았네/누가 이 기도 때문에 비가 퍼붓는다고 말하는가/본래 정성을 쏟았기 때문임을 나는 아네(昨日桑林玉體疲/病臣終夜仰天窺/誰言??由斯禱/我識精誠有素爲)”

그러나 세상이 타락하면서 내 탓은 사라지고 남 탓은 크게 늘었는데, 당나라 한유(韓愈)는 ‘원훼(原毁)’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옛날의 군자는 자기를 책망하는 것은 무겁게 여겨서 주밀하게 하고 남에게 기대하는 것은 가볍게 여겨서 간략하게 했다…지금의 군자는 그렇지 않아서 남은 상세하게 책망하고 자기는 간략하게 책망한다”라고 한탄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유출에 민정수석의 항명 파동까지 겹쳐서 세간의 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열렸다. 남 탓은 상세하고 내 탓은 간략하리란 예상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근사록에 “성인은 자기를 책망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많고 남을 책망해서 자기에게 호응시키는 것은 적다(聖人責己感也處多責人應也處少)”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책망해서 많은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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