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터 A1 앞에서는 ‘신발 퍼포먼스’가 열렸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그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 노동자 26명의 신발을 한 줄로 세워 전시했습니다. 경찰과 DDP 안전 요원들이 둘러싸여 퍼포먼스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지만 엄숙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이들이 이날 이곳에서 퍼포먼스를 연 것은 바로 쌍용차의 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 신차 발표회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쌍용차가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뒤 42개월 가까이 3,600억원 을 들여 연구개발한 끝에 출시되는 첫 신차라는 상징성에다가 이날 행사를 위해 인도에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까지 참석할 예정이었던 터라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보다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이 여러 차례 “티볼리가 잘 팔려 연간 16만대 이상 판매되고 회사가 안정을 찾으면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살필 수 있다”고 했고, 가수 이효리씨는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티볼리가 잘 팔려 해고 노동자분들이 복직할 수 있다면 비키니라도 입겠다”고 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죠. 바로 그 티볼리가 팔리기 시작하는 날이니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겠죠.
이날 티볼리 행사장은 여느 신차 발표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은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행사장 안전요원들은 출입을 위한 출입증 체크를 상당히 꼼꼼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수선한 모습들도 자주 목격 됐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힌드라가 인도 기업이다 보니 이날 행사장에는 인도 기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기자 간담회나 언론 대상 행사에 인도 기자를 보기는 쉽지 않죠.
한편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마힌드라 회장(2011년 방한 당시에는 부회장이었음. 회장 취임 후에는 처음 방한인 셈이죠)은 한국과 인도, 마힌드라와 쌍용차의 결속력과 인연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왜 인도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면서 “한국은 희망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거대 경제들이 휘청거릴 때 한국 경제만 예의가 되어 다른 경제 대국을 밝히는 등불이 됐다. 우리는 장기적으로 한국 브랜드의 성공이 반드시 쌍용차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투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리고 과거 쌍용차의 주인이었다가 ‘먹튀’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국 상하이자동차를 의식한 듯 마힌드라 회장은 “마힌드라는 한국에 장기적 계획을 갖고 왔으며 중간에 포기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장애물들은 쌍용차에 대한 저희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자신이 방한하면서 두 가지 미션을 가지고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첫번째 4,500명 쌍용차 가족의 잘 되도록 하고 그들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며, 두번째는 쌍용차가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고 세계 곳곳에 쌍용차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코란도(KORANDO)의 이름 안에 담겨 있는 비전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를 통해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발표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고 노동자 복직 문제에 대해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가 흑자 전환된 후 이뤄질 것이라며 당장 복귀는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현재 복직을 요구하며 해고 노동자들이 쌍용차 평택 공장 굴뚝에서 농성 중인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잘 알고 있다”며 일자리를 잃은 분들과 그 가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복직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은 “제가 복직을 결정한다면 이는 약 5,000명에 달하는 쌍용차 노동자와 협력업체 직원, 딜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고,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며 “먼저 티볼리 같은 혁신적인 차를 많이 내놓고 쌍용차가 흑자로 돌아서면 순차적으로 필요에 따라 인력을 충원할 것이고 그 인력은 2009년 실직자 중에 뽑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앞서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인도를 찾아 마힌드라 회장을 면담했을 당시 동석한 파완 쿠마 고엔카 마힌드라 그룹 자동차ㆍ농기계 부문 사장은 “티볼리가 출시될 즈음(2014년 말) 상황을 보자”며 즉답을 피했었습니다. 결국 이날 마힌드라 회장의 언급은 당장은 해고자 복직이 쉽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인데요.
그는 이어 “현지 경영진을 신뢰하고 그들 의견을 존중하는 것 또한 우리의 방침”이라며 복직 문제에 대한 판단은 이유일 쌍용차 사장에게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 사장은 “복직이 이뤄지려면 생산이 그만큼 늘어나야 되는 데, 현재는 25만대 생산규모에도 불구하고 15만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조기 복직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내일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 평택을 찾을 예정입니다. 티볼리를 만드는 생산라인 현장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간다고 하는데요. 분명 저 높은 굴뚝에서 추위와 쌓이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도 잠시나마 만났으면 합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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