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를 자기 회사 대표로 등록 연대보증인으로 내세워 77억 대출
30억 못 갚은 채 저축은행 파산하자 예보에서 운전기사에게 지급 명령
"변호사비 수십억씩 쓰면서 나몰라라" 사기 혐의로 피소… 검찰 수사 착수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은인표(58ㆍ수감 중)씨의 운전기사였던 K씨는 요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난데없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은씨가 K씨 명의를 보증 삼아 빌려간 21억원을 갚으라는 지급명령 신청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불법대출, 횡령으로 영업정지를 당해 수많은 서민 피해자를 양산했던 은씨가 구속된 지 6년째가 됐지만 은씨가 벌여놓은 범죄행각이 여전히 K씨를 괴롭히고 있다.
12일 서울중앙지검은 K씨가 최근 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특수2부(부장 임관혁)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K씨는 은씨에게 돈을 갚을 것을 요구했으나 은씨가 ‘나 몰라라’식으로 나오자 고소에 나섰다.
K씨가 은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1월경. 운전기사 모집광고를 통해 채용된 K씨는 은씨가 구속되던 2009년까지 일했다. 은씨는 2005년 K씨에게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져오라고 한 뒤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L사의 대표이사로 K씨가 등기되도록 했다. 대출을 받을 때 K씨를 허위 보증인으로 내세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은씨는 2009년 서울저축은행에 L사의 형식상 대표인 K씨를 연대보증인으로 내세워 77억원을 대출받았으며 이 가운데 30억원을 갚지 못했다. 서울저축은행이 2013년 9월 파산하자, 파산관재인인 예보가 K씨에게 변제되지 않은 대출금을 갚으라고 나섰다. K씨는 은씨가 대출 받을 때 그의 지시대로 도장만 찍었을 뿐, 대표이사로서 급여를 받은 적도 없고 대출금 사용처에 대해 알지도 못했지만 책임을 떠안게 된 셈이다. 당시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은 K씨의 재산이 전무한데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으며, 대출 받은 돈은 은씨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모두 사용했다.
은씨는 이미 주변 사람들의 명의를 빌려 유사한 방법으로 불법대출을 받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K씨는 “은씨가 변호사 비용으로는 수십억 원씩 펑펑 쓰면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이나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이렇게 큰 고통을 주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BMW760을 탔던 은씨는 시간이 지나자 최고급 차종인 ‘마이바흐’로 바꿔타고 다녔으며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스위트룸을 장기간 빌려 사무실로 사용했다. K씨는 월급 200만원을 받으며 운전은 물론 은씨의 잔심부름을 도맡았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오는 일도 병행했다.
K씨는 은씨 지시로 통장을 만들었으며, K씨 통장으로는 제주도 카지노에서 한번에 수천만~수억원이 송금됐다. K씨는 “은씨는 법적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본인 명의로 신용카드와 통장, 휴대폰을 만들지 않는다. 계약서에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K씨는 은씨가 시키는 대로 수표나 현금을 통장에서 인출해 은씨에게 전달했다. 은씨는 지인들과 만나 식비와 술값, 선물 값 등으로 거의 매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사용했다.
K씨에 따르면 은씨의 일과는 단순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삼성동 소재 D식당에서 점심으로 복 요리를 먹은 후 인터컨티넨탈호텔로 이동해 지인들을 만났다. 저녁에는 청담동 소재 N일식당으로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했으며, 룸살롱이나 가라오케, 인사동 근처 식당에도 들렀다. K씨는 “하루에 수천만원씩 쓰는 것은 기본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 내키는 대로 돈도 주고 고급시계도 사주며 부를 과시했다”고 기억했다.
은씨는 불법대출과 횡령,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2개의 사건에서 각각 징역6년과 3년을 선고 받은 뒤 사건이 병합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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