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휴직한 산드라의 복귀를 앞두고 사장은 “비열한 제안”을 한다. 그녀를 복직시킬지, 보너스 1,000유로(약 130만원)를 받을지 직원들이 결정하라는. “그녀가 아니면 네가 해고”라는 반장의 위협 속에 치러진 투표 결과는 2대 14. 어렵게 재투표 약속을 받아낸 산드라는 동료들을 일일이 만나 도움을 호소한다. 벨기에 형제감독 장 피에르ㆍ뤽 다르덴의 ‘내일을 위한 시간’은 평론가 이동진의 비유처럼 ‘사회윤리학 실험’을 연상케 한다. 월요일 재투표까지 주어진 시간은 원제처럼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뿐이다.
▦ 절친이라 믿었건만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이, 울음을 터뜨리며 잘못을 빌고 지지를 약속하는 동료, 의견이 갈려 주먹다짐까지 하는 부자(父子)…. 찬반 숫자를 세어가며 산드라의 고단한 여정을 좇다 보면 맥없이 되풀이되던 그녀의 질문에 조금씩 힘이 붙어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뭉클한 감동 혹은 주먹 불끈 쥐게 하는 분노를 자아내거나 ‘연대의 힘’을 부르짖지 않는다. 대신 산드라의 입을 통해 미세하게 변주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관객들이 그녀와 동료들의 ‘실험실’로 스스로 들어오게 만든다.
▦ 이 차갑고도 따뜻한 영화가 개봉 11일만에 2만3,600명을 불러모았다. ‘국제시장’의 광풍 속에 고작 40개 상영관으로 거둔 성과로는 썩 좋은 성적표다. 원제보다 더 와 닿는 국내판 제목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관객 사전투표를 통해 정했다는데, ‘내일’은 산드라가 되찾아야 할 ‘내 일(my job)’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내일(tomorrow)’을 뜻한다는 멋진 풀이도 관객의 댓글에서 따왔단다.
▦ 70m 굴뚝에 올라 “함께 살자” 외치는 해고 노동자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내일을 되찾기 위해 진실을 밝혀 달라” 호소하는 세월호 유족들…. 영화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이 땅의 잿빛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산드라는 남편과 통화하며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라고 말한다. 이어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까만 화면 너머로 산드라가 타박타박 걷고 있을 거리의 소음들이 오래도록 들린다. 그 소음 사이로 산드라는 조용히 묻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나라면, 나의 동료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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