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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연, 세상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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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연, 세상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입력
2015.01.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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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여성에게 참가는커녕 관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현대의 모든 프로스포츠 역시 남성 위주로 발달해 왔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스포츠계도 변하기 시작했지만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참여의 한계는 늘 존재했다. 그랬기에 그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늘 편견과 먼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이겨내고 남성성 짙은 종목에서 당당하게 활약 중인 이들도 있다. 그녀들은 중독된 영역에서 고독하지만 지독하게 달려 새로운 길을 쓰려한다. 스포츠계 '독한 녀자'들의 의미 있는 도전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강한 여자'라는 의미를 위해 '녀자'에 일부러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음도 밝힌다. -편집자주-

시리즈 다시보기☞ ①송가연 ②권봄이 ③김예지 ④지소연 ⑤김자인

지난해 격투기계는 만 열아홉 살의 여성 파이터 송가연(20·팀원)의 등장에 주목했다. 격투기 선수라고는 믿기 힘든 곱상한 얼굴로 강력한 발차기를 선보이는 그녀의 반전 매력에 대중과 언론은 '미녀 파이터' '철창의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갑자기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짙은 그림자를 동반했다. 격투기보다 방송으로 먼저 뜬 그녀를 두고 '선수냐 연예인이냐'는 비아냥도 있었고, 데뷔전을 포함한 두 차례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선 실력과 매너에 대한 논란이 휘몰아쳤다. 관심은 분에 넘쳤고, 비난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송가연은 그러나 쓰러지되 꺾이지 않았다. "독하게 견뎌 온 지금까지의 삶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링 위의 상대와 싸우기 전부터 세상과의 싸움을 먼저 시작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Round 1. 세상이란 링 위에 오르다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송가연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나고 자란 제주도를 떠나 부산 유학을 선택했다. 경호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부산 경호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그 곳에서 일찌감치 ‘무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배웠던 합기도는 물론 유도, 검도, 태권도, 절권도 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무술을 배워가며 단증을 쌓아나갔다.

고교 1학년 때 맞은 아버지의 죽음. 예상치 못한 이별은 송가연을 더 독하게 만든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 때부터 자신 스스로의 생계와 미래를 책임져야 했다. 음식점, 주유소, 편의점 등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가리지 않고 했다. 밀려오는 피로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고, 청춘들도 힘들어 아우성치는 ‘갑질’도 버텨냈다.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운동화 끈을 다시 더 꼭 조여 맸다. 유일한 해방구였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급여를 털어 방과 후에는 킥복싱까지 배워가며 세상과 싸울 힘을 키웠다. 그렇게 일찌감치 세상이란 링 위에 올랐던 송가연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악에 받쳐 살았던 것 같다. 매 순간이 고비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했기에 그만큼 삶에 대한 무게도 크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 무게감은 여전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독하게 마음을 먹게 됐다."

Round 2. 편견과의 싸움

성인이 된 송가연은 더 독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특전사 입대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송가연이 대학 1학년 때인 2013년 특전사 실기 시험을 준비하던 중 종합격투기를 시작했던 게 결정적 계기였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세상에 펀치를 휘두르고 킥을 날렸다. 울분이 풀렸다. 적성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당초 마음먹었던 특전사 지원까지 취소하고 종합격투기에 매달렸다. 격투기에 도전하며 세상에 함께 도전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로드FC의 지역별 하부 대회인 인투리그에서 정문홍(41) 로드FC 대표의 눈에 띄어 입단 제안을 받고 본격적으로 격투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송가연이 먼저 대중에 알려진 건 팔각 케이지 위가 아닌 방송에서였다. XTM ‘주먹이 운다’에 출연해 수준급의 스파링 실력을 보여줬지만 대중들은 기량이 아닌 어린 나이와 앳된 외모에 먼저 주목했다. 격투기와 관련 없는 SBS '룸메이트'에도 모습을 드러내자 한편에서 '연예인인지 운동선수인지 모르겠다'며 정체성 논란이 제기됐다.

송가연도 속은 탔다. 방송과 격투기를 병행해야 하는 환경을 탓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관심이 이종격투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드FC의 일원이었기에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법도 이 과정을 통해 배웠다.

Round 3. 지독한 성장통

지난해 8월 감격적인 프로 데뷔전을 치러 승리를 거뒀지만 또 다른 비난이 이어졌다. 상대였던 일본의 에미 마야모토(34)가 두 아이를 둔 아마추어 파이터였다는 사실은 '송가연 실력 거품 논란'으로 이어졌다.

격투기 팬들은 무서웠다. 빈 틈을 주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4일에 치른 두 번째 경기에서는 프로전적 8전 3승 5패 전적의 타카노 사토미(24.일본)에 패한 뒤 ‘탭 논란’과 ‘매너 논란’에 휩싸였다. 경기 중 항복을 선언한 듯했지만 인터뷰에서 항복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 경기 후 상대 선수의 인사를 거절한 점이 팬들의 분노를 샀다. 설상가상으로 거친 욕설을 묘사한 글로 송가연을 두둔했던 팀 동료와 코치의 발언은 ‘패거리 문화 논란’으로까지 번지며 불 붙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영상 바로가기 http://goo.gl/6qmC0k)

송가연은 자신의 SNS에 사과의 글을 남기며 깨진 거울을 붙여도 보려 했지만 한 번 실망한 팬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손에는 상처가, 거울에는 선명한 금이 남았다. 관련 기사의 댓글엔 비난 일색이었고, SNS에는 살해 협박 게시물까지 올라왔다. 웬만한 비난에도 끄떡 않던 송가연도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거센 후폭풍에 잔뜩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성장통이었다. 외부 활동도, 미디어 노출도 자제하고 심신 회복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녀는 세상의 ‘잔인한 펀치’를 견뎌내고 있다.

Round 4. 세상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송가연은 "아직도 방송은 어려운 것 같다"면서 "대중의 많은 주목을 받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켜보는 이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격투기계 한 관계자는 “송가연의 현재 실력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보기 드문 수준의 재능을 갖춘 신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아직은 몇 차례의 경기에 대한 평가보다는 과정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무리한 마케팅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송 활동에 대한 관리는 분명 필요하다”며 “대중에게 비춰진 송가연 개인의 매력이 이종격투기 흥행에 적잖은 역할을 해온 점은 분명하지만, 어린 선수인 만큼 (방송 활동이)과했을 경우 돌아올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세상과 등지고 살 수 없는 법. 앞만 보고 내달려왔던 송가연 본인도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비판을 거울 삼아 주위도 둘러보고, 걸어 온 길도 한 번 돌아볼 줄 알게 됐다. 팀 동료는 물론 방송으로 인연을 맺은 '룸메이트' 식구들까지 홀로 견뎌왔던 고교 시절에 비하면 곁을 지켜주는 이들도 늘어났다.

세상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걸 깨달았기에 자신이 그려 왔던 진짜 목표도 다시 한 번 다잡았다. 송가연은 올해 목표를 묻자 "좋은 시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간결히 답했다. 자신의 진정성과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방송도 언론도 아닌 케이지 위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자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다"며 궁극적인 목표를 전한 송가연은 마지막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송가연은 "매 순간이 힘들었다. 친구들과 만나 이곳 저곳 다니며 놀고도 싶은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더 독하게 마음 먹고 운동에 임하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내비쳤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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