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가히 분노의 시대라 할 만하다. 분노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남보다 잘났는데 알아주지 않는 데서 생길 때가 많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현석(李玄錫)은 아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사람들은 말로 남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수치로 여기고, 기운으로 남을 깔아뭉개지 못하면 수치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사소한 것을 두고 제 뜻과 같지 못하다 하여 분노하는 것은 소인배의 처신이다. 근대의 문인 김윤식(金允植)은 노년에 지은 글에서 “사소한 일을 보고 사소한 말을 듣고 눈썹을 찌푸리고 눈알을 부라려서 하루 사이에도 몇 차례나 낯이 붉어진다. 그러나 중대한 일이나 중대한 말을 당하게 되면 기운이 빠지고 위세가 사라지며, 머뭇머뭇 물러난다”라고 하였다. 큰 용기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법이다. 이현석은 “분노와 욕심이 막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문득 시원하게 이를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은 천하의 큰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다”라 하였다.
큰 용기가 있어 크게 성내는 것이 군자의 분노다. 김윤식은 순(舜) 임금이 흉악한 네 명의 권신 사흉(四凶)을 제거한 것과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폭군을 몰아낸 것, 공자가 간신의 우두머리 소정묘(小正卯)를 죽인 것과 같은 것이 군자의 큰 분노라 하였다. 군자의 분노는 크게는 천하를 뒤흔들고 작게는 국가를 움직이며 그 혜택은 당세를 덮고 그 명예는 무궁하게 드리워진다고 하였다. 이런 것은 의리(義理)의 분노이므로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노는 혈기(血氣)의 분노라 잊어야 한다. 성리학자들은 이를 망노관리(忘怒觀理)라고 한다. 잠시 화를 가라앉힌 후 천천히 이치를 따져보라는 말이다. 19세기의 문인 홍직필(洪直弼)은 “분노를 잊으면 공정해지고 이치를 살피면 순조롭다(忘怒則公 觀理則順)”는 명언을 남겼다.
불교에도 백골관(白骨觀)이라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다. 명나라 진계유(陳繼儒)의 글에 따르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종기가 나서 점차 문드러져서 농이 흐르고 이것이 점점 번져 정강이와 무릎, 허리에까지 이르고 다시 온 몸에 미치게 되면 모든 육신이 다 문드러져 백골만 남게 되는 과정을 깊게 생각하다보면 일시의 분노를 잊을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 몸이 백골이 되어가는 과정을 천천히 생각하는 일이 너무 끔찍하다면 이런 글을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들꽃을 가족으로 삼고 꾀꼬리를 풍악으로 삼아, 가슴 속에 하나도 끌리는 것이 없다오. 해가 바지랑대보다 길어지면 일어나 한 사발의 보리밥을 먹소. 달기가 꿀과 같지요. 매번 당신을 떠올리면 감정의 뿌리가 마음을 닫고 있고 분노한 기운이 가슴을 막고 있을 듯하오. 낮에는 눈을 부라리고 팔뚝을 걷어 부치며 목과 얼굴까지 모두 벌겋게 되어 눈 내리듯 침을 튀기느라 밥상을 대하고도 먹는 것을 잊고 있겠지요. 밤이면 외로운 등불이 깜박거리는데 비단이불조차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쉬고 짧게 탄식을 하느라 전전반측하는 모습이 떠오르오. 황면노자(黃面老子)의 백골관법(白骨觀法)으로 그 수심을 없애주지 못하여 한스럽소.”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학자 이만부(李萬敷)가 분노로 인해 먹는 것과 자는 것조차 잊고 있는 벗에게 보낸 편지다. 직접 그 분노를 풀어주지 못하여 한스럽다고 하였지만 이 편지글의 앞 대목 자체가 문학의 백골관이다. 들꽃을 가족으로 삼고 산새를 풍악으로 삼아 느지막이 일어나 보리밥 한 사발 먹는 즐거움을 떠올리면, 일순의 분노가 절로 풀릴 것이라 한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잘난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분노하고 적게 가진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보고 더욱 분노하니, 온 세상은 점점 분노로 가득 차고 있다.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 분노가 일 때 이만부의 글이 그 뜨거운 열기를 식혀줄 수 있을 듯하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