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명 사상… 재산 피해 90억
“불이야, 불! 아파트 전체에 불이 났어요.”
10일 오전 9시 27분 경기경찰청 제2청 112종합상황실에 한 남성의 급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슷한 시각 119에도 화재 신고가 접수됐고 소방당국은 곧바로 상황을 전파한 뒤 선발대를 급파했다. 신고 6분 만인 오전 9시 33분 의정부 중앙ㆍ호원 119안전센터 소방관 14명이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대봉그린아파트(10층ㆍ88세대) 현장에 도착해 초기 대응에 나섰다. 펌프차와 고가 사다리차 등 장비와 인력도 차례로 도착했다.
하지만 비좁은 도로 탓에 장비 진입이 늦어졌다. 폭 5~6m 골목길 양쪽에 주차된 차량들이 뒤엉켜 펌프차(차폭 2.42m) 1대가 드나들기 빠듯했다. 설상가상 건물 뒤편은 전철 1호선 철길과 맞닿아 진입 자체가 막힌 상태였다.
진압이 지연되는 사이 아파트 1층 필로티 형태의 주차장에 세워둔 사륜 오토바이에서 발화된 불은 삽시간에 다른 차량으로 옮겨 붙어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화재에 취약한 우레탄 폼 재질로 마감처리 된 주차장 바닥과 천장, 드라이비트로 시공된 건물 외벽은 불쏘시개나 다름 없었다.
김석원 의정부소방서장은 “오토바이 위에도 비닐 차광 막이 설치돼 불길이 확산했다”며 “진입로 확보가 지연되고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와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오전 10시 47분에 화재비상 2호를, 8분 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화재비상 3호를 각각 발령하고 경기북부 10개 시ㆍ군 소방서의 가용 인력 500여명과 장비 120여대를 모두 동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오히려 옆 건물로 확대됐다. 불과 1.5m 떨어진 드림타운 아파트(10층ㆍ88세대)로 옮겨 붙은 불은 인근 해뜨는마을 아파트(15층ㆍ60세대)와 단독주택 1세대, 다가구주택 2세대, 사찰 1동 마저 삼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5~10m 높이의 거대한 불기둥도 뿜어져 나왔다.
주말 오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뒤늦게 화재가 난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필사적인 대피를 시작했다. 건물 고층부에 있던 주민들은 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 일부는 수십 미터를 줄과 배관에 의지해 간신히 내려왔고 뛰어내려 목숨을 건진 주민도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 옥상에선 목숨을 건 헬기 구조 작업이 이어졌다. 10여명은 50~60cm 간격의 대봉그린아파트 옥상과 드림타움 아파트 옥상 사이를 아슬아슬 건너 탈출하기도 했다.
해뜨는 마을 아파트 입주자 박대용(58)씨는 “일부 층에선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고 오작동으로 오인한 주민도 있어 대피가 늦어졌다”며 “인명 구조용 헬기 2대가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거센 바람을 일으켜 화재가 더욱 커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큰 불길은 신고 2시간 16분 만인 오전 11시 44분쯤 잡혔지만, 화마가 할퀴고 간 현장은 처참했다.
이번 화재로 안모(68ㆍ여)씨 등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는 9명이다. 소방서는 90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고 추산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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