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새해 첫 1,000만 관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가족을 지켜 온 아버지를 그린 이 영화는 지난달 17일 개봉해 11일까지 960만명을 모아 늦어도 15일이면 1,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놓고 공방이 오가는 등 ’국제시장’은 정치적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이에 영화의 주인공 덕수 역을 맡은 황정민(45)은 “논쟁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국제시장’은 가족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충무로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는 그는 어쨌든 ‘국제시장’으로 자신의 종전 최고 흥행 기록(2012년 ‘신세계’의 468만명)을 넘어 곧 ‘천만 클럽’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악 영화 ‘히말라야’ 촬영에 여념이 없는 황정민을 만났다.
_‘국제시장’이 1,0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많은 관객이 우리가 처음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다른 생각 없이 동일하게 받아준 것 같다.”
_영화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흥행에 도움을 줬다는 분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면서 커져 보인 것일 뿐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논쟁이) 오히려 방해가 됐으면 몰라도 흥행에 도움이 됐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_영화 개봉 후 그런 논쟁이 벌어졌을 땐 느낌이 어땠나. ‘국제시장’이 보수 영화, 우파영화라는 관점에는 동의하나.
“그런 논쟁엔 아무 생각도 없었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국제시장’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 이야기다. 우파 영화, 보수 영화라는 관점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에 관한 영화일 뿐이다. 나는 촬영을 다 마친 영화에는 원래 신경을 쓰지 않는다.”
_영화에 대한 관객 반응 중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들던가.
“‘영화에서 아버지를 봤다’는 얘기가 가장 좋다. 그러려고 이 영화를 한 거니까.”
_윤제균 감독에게 아버지에 관한 영화라는 말만 듣고 ‘국제시장’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다.
“그냥 아버지 얘기라는 점에서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관계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아버지라는 큰 산 같은 존재를,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다. 아홉 살 아들이 있는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아버지도 나를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출연 결정 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이 시기에 이 영화를 할 수 있게 돼 진짜 큰 복이구나’ 생각했다.”
_‘국제시장’을 찍으면서 이것만은 관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맨 마지막 장면이다. ‘나 진짜 힘들었다’는 대사, 그 초라한 노인이 말하는 한마디가 이 영화의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아버지의 이야기일 수도, 나의 이야기일 수도, 다른 누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나이가 많든 적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진짜 힘들지 않나. 그 대사에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_아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나.
“아이가 커서 친구들과 아버지 이야기를 했을 때 이런 말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는 되게 따뜻한 분이었다’고.”
_아들과 대화는 많이 하나.
“완전 많이 한다.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보상심리라고 할까. 아이에게 굉장히 많이 다가가려고 하는 편이다. 일이 없을 땐 맨날 친구처럼 같이 논다.”
_‘국제시장’의 주인공이 윤덕수가 아니라 황정민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 중 어떤 사건들을 뽑아서 영화를 만들 것 같나.
“첫째론 집사람을 만난 것. 헤어지지 않고 잘 버티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건 월급도 얼마 안 되는 ‘연극쟁이’에게 큰 사건이었다. 그 다음으론 영화 첫 작품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것. 첫 발을 잘 들여놓은 거니까. 마지막으론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서 관객에게 나를 인식시켰던 일이다. 그 영화 덕에 어릴 때만 해도 나와는 아주 먼 나라 얘기인 것 같았던 큰 상을 처음 받게 됐다.”
_1,000만 영화가 이미 나왔어야 할 배우인데 늦은 감이 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 진짜 운이 좋았다. 원래 흥행 결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배우 생활을 연극으로 시작해서다. 관객이 없어서 공연을 못한 적도 있고 너무 많아서 돌려보낸 적도 있다. (흥행 편차에는) 익숙해져 있다.”
_촬영 현장에서 황정민은 어떤 배우인가.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친구처럼 장난치고 낄낄대며 지낸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연 배우가 파이팅 넘치게 스태프들과 지내면 감독이 훨씬 쉽게 일할 수 있다. 일례로 난 현장에 늦어본 적이 없다. 늘 한 시간 전에 간다. 그게 나와의 약속이다. 내가 먼저 준비를 하고 현장에 있으면 촬영 준비도 빨라진다. 굳이 말로 다그칠 필요가 없다.”
_올해 영화가 계속 이어진다. 다음 개봉작인 ‘베테랑’은 어떤 영화인가.
“사회악을 쳐부수는 열혈 형사 역할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라서 우당탕 하는 액션 연기가 많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베테랑’ 이후 촬영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선 조연이라 출연 분량이 많지 않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이석훈 감독이 연출하는) ‘히말라야’는 30~40% 정도 찍었고 4월이면 끝날 것 같다. 소처럼 일하고 있다. 하하”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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