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사 이어 목사들까지 진보 목소리 확산되는 이유는
관객 1,000만을 앞둔 영화 국제시장을 가장 반긴 사람들 가운데 보수논객들도 있다. 최공재 영화감독은 이를 우파 컨텐츠의 첫 흥행으로 평가하고 “진보진영이 99%를 장악한 영화계에서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시장이 문화계의 우클릭을 자극하고 있다면, 그와 반대로 보수일색이던 직역에서 진보로 좌클릭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사’자 직업군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변호사 의사에서 약사 변리사 회계사, 심지어는 목사 직역에서도 목격된다. 이들이 기득권층, 보수색채에서 벗어나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사’자 전문 직업군은 그 간 제도적 특혜 속에 기득권을 누리며 보수의 둑 역할을 해왔다.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변하는 단체들도 자연스럽게 보수성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정부의 보호막이 걷혀 기득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대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해당 직역이 양적 팽창으로 피 흘리며 경쟁하는 레드오션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한 내부 충돌 속에 2차로 보수색깔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법조 3륜의 한 축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때 희생자 유가족 편에 서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변협은 그러나 검찰이 공안사건 수사방해를 이유로 요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징계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강경보수 변호사들이 ‘특정세력에 치우친 활동’으로 비난한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과거에는 예상할 수 없던 변화다. 11만명의 회원을 둔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의료법인 영리 부대사업 허용에 대한 찬반이 진보, 보수 논쟁으로 갈려 내홍을 겪었다. 일부는 야당, 시민단체와 연대해 정부 안에 반대하는 협회의 좌경화 행보를 두고 볼 수 없다며 협회를 탈퇴, 대한평의사회를 발족시켰다. 보수직역의 진보화는 종교계에서도 나타나 강경보수이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까지 중도보수를 공식 선언했다. 보수층 신자가 많은 불교계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나 총리 후보자 의혹 등 현실 정치에 한층 진보 발언을 하고 있다. 재미동포 신은미(54)씨가 검찰조사로 이어진 이른바 종북콘서트를 연 곳도 조계사 경내였다.
‘사’자를 비롯한 전문직역의 변신에 대해 내부 밥그릇 싸움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우선 나온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대국민 서비스 강화에 따른 전문직의 대규모 양산으로 등장한 배고픈 ‘사’자들의 반발이란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자 집단이 누리던 이익을 보장해주지 못하다 보니, 그들도 보수세력과 거리 두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목소리만 큰 깡통 진보일 수 있다는 지적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노영희 변협 수석대변인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회원들이 합류하다 보니 공통 분모가 퇴색한 것”이라며 “시대흐름에 따른 회원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보수직역의 진보화가 불황타개를 위한 신구(新舊) 간 이해충돌이 아니라 사회변화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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