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다.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마주보고 있는 나와 남, 마주보고 있는 남과 여, 마주보고 있는 노사, 여야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관계란 무얼 하든 항상 서로 마주보는 구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태극에 함축된 음양의 의미가 동양학문의 출발이다. 태극을 조금 더 인문적으로 시각화한 그림이 복희여와도다. 복희와 여와는 음양의 한 쌍으로 서로 몸을 꼬아 하나를 이룬다. 복희여와도와 비슷한 모습이 칡과 등나무의 조합이다. 그렇지만 칡덩굴과 등나무덩굴이 꼬인 모습은 최악이다. 칡은 항상 왼쪽으로만 감기고, 등나무는 항상 오른쪽으로만 감긴다. 자기만 주장하니 결국 ‘갈등’이라고 한다. 복희여와도는 화합을, 칡과 등나무는 갈등을 각각 연출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물며 소통에 있어서야. 오늘은 이 시대에 절실한 소통에 걸맞은 우리 약차를 소개하고자 한다. 차는 손님과 주인이, 나와 남이 대면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도구이자 격식이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하나의 문화다. 커피로 일관된 오늘날, 다시 복구하고 싶은 우리의 아름다운 차 문화, 쌍화차(雙和茶)를 소개한다.
쌍화(雙和)에서 ‘쌍’은 음양의 한 쌍을 의미하는데, ‘쌍화’를 쉽게 해석한다면 ‘손님과 주인이, 부부가 함께 마시면 부부사이가, 나와 남이, 내 몸속의 기와 혈이 함께 화평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쌍화차를 대접하는 것은 ‘나는 너와 화목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도가 바탕에 깔리게 된다. 나를 찾은 손님을 위해 정성들인 쌍화차를 끓이고, 주인이 베푸는 쌍화의 의미를 고맙게 받아들이며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 생각만 해도 정겹지 않은가. 쌍화차의 이름에는 그런 속뜻이 숨어있다.
쌍화차는 대지가 얼어붙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느껴지는 이 계절에도 제격이다. 작약 천궁 당귀 황기 숙지황 대추 생강 계피 감초를 뭉근히 달인 쌍화차는 허해진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 작약과 감초는 뭉친 근육과 근육의 경련으로 인한 통증을 풀어주고, 숙지황 당귀 천궁 작약은 혈액을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생강, 계피는 혈맥을 따뜻하게 하고, 황기, 대추는 기운을 도와 원기를 보충한다.
체력과 정력이 떨어졌을 때, 전날 과음을 했을 때, 풀리지 않는 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 추운 곳에서 떨다가 들어왔을 때, 따뜻한 한 잔의 쌍화차는 건강도 챙겨주는 최고의 선택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항상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正).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나의 머리는 완고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그래서 내 머리에 입력된 자료와 다른 견해는 틀렸다고 본다(反). 그러나 다른 견해를 관용하고 받아들일 때 나는 비로소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合).
오늘날 우리는 융합과 소통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부부싸움 후 남편이 끓여 아내에게 권하는 한 잔의 쌍화차, 찬바람에 떨면서 데모하는 노동자들에게 사측이 건네는 한 잔의 쌍화차, 썸타는 남녀가, 국회의 여야가, 서로에게 권하는 소통과 화합의 메시지, 따뜻하고 정겨운 쌍화차 문화를 그려본다.
허담 옴니허브대표ㆍ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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