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
로라 베이츠 지음ㆍ박진재 옮김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솔직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펼쳐본 적은 있지만 그 문장들의 세세한 감흥을 기억하지 못한다. 청소년기 그저 유명한 책이라 해 들여다 보긴 했지만 대충 줄거리만 받아들이고 그 난해한 독백들을 건너뛴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게 흘려버린 고전을 한 문장 한 문장을 줄 쳐가며 통독을 권하게 한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400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전한 화자는 다름 아닌 감옥의 무기수였다.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는 미국 인디애나주 워배시 밸리 교도소의 최악의 죄수들만 격리 수용된 구역인 ‘슈퍼맥스’에서 벌어진 셰익스피어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인디애나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로라 베이츠는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셰익스피어를 강의했다. 그 문장이 쉽고 달콤하진 않지만 맥베스나 오셀로, 햄릿 등이 저지른 비극을 자신의 죄와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죄수들은 각자 자신의 독방에서 무릎을 꿇고 음식이 들어오는 좁은 구멍에 머리를 가까이 대 수감실 복도에서 전하는 베이츠의 강의를 들었다. 그 독방의 죄수들 중 래리 뉴튼은 정곡을 찌르는 비평으로 베이츠 교수를 사로잡았다.
뉴튼은 10대에 살인죄로 기소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10년 가까이 독방에 홀로 갇혀 지내왔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전부인 그는 베이츠 교수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셰익스피어가 누군지조차 몰랐었고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무기력한 죄수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인식하고 ‘진정한 자유’를 깨닫는다. 그는 10여 년 만에 독방에서 풀려나고 같은 처지의 재소자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 워크북을 쓰기 시작한다. 뉴튼은 베이츠 교수에게 고백했다. “셰익스피어는 제 삶을 구원했다”라고.
동료 죄수들과의 토의 시간에 뉴튼은 “햄릿은 왜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란 질문들을 던졌다. 동료들이 “자기 아버지를 죽였으니 햄릿이 그자를 죽이는 것은 맞다. 그래 복수는 명예로운 거야”라고 하자 그는 “그런데 어째서 복수가 명예로운 거지? 무슨 근거에서 복수가 명예롭다는 거지? 그리고 도대체 명예는 뭘 말하는 거야?”라고 되묻는다. 동료 모두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제껏 누구도 그들을 그릇된 인생을 살게 하고 범죄를 저지르게끔 몰아간 그런 근본적인 개념들에 대해서 의문을 갖도록 질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특별한 죄수의 별난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채 다섯 걸음도 안 되는 좁은 독방에서 10여 년을 보냈고, 남은 인생 또한 감옥에서 보내야 할 뉴튼은 베이츠 교수에게 이런 메모를 전했다. ‘삶은 빠르게 흘러갈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누리고 살 기회를 흘려 보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무수한 자신들의 감옥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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