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자동차 수출에서 가격경쟁력을 통해 매출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특히 중ㆍ소형차 부문에서 한일 간 치열한 글로벌시장 쟁탈전을 벌였던 과거엔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쨌든 서민용 승용차일수록 가격 민감도가 크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 미국 시장에서 일제차 가격은 같은 등급의 한국차에 비해 비싸져 한국차 매출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식이다.
▦ 현대자동차가 ‘엑센트’의 미국 수출을 개시했던 1994년 말부터 실제 ‘환율대박’이 터졌다. 당시 ‘엑센트’의 미국 판매가격은 1,500㏄, 3도어인 경우 8,079달러였다. 반면 경쟁차종인 도요타 ‘터셀’은 95년 초 8,958달러에서 급격한 엔고(高) 현상으로 불과 4개월 만에 9,998달러로 10%나 급등했다. 고만고만한 소형차종에서 가격차가 2,000달러나 벌어지자 소비자들은 너도나도 ‘엑센트’를 선택했고, 현지 언론들도 ‘현대차가 미국 소형차 시장을 휩쓴다’며 법석을 떨어댔다.
▦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공급이 딸리자 본사는 미국 내 500개 딜러들에게 당분간 ‘엑센트’ 주문을 받지 말라는 전문을 띄워야 했다. 울산 제3공장 직원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12시간 2개조,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하느라 수개월째 연장근무와 주말특근을 이어갔다. ‘수당도 좋지만 사람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그 해 라일락 향기 감도는 봄밤의 공장지대엔 신명과 활력이 넘쳤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누리던 일본을 견제하려고 미국이 엔고를 밀어붙였던 시절의 얘기다.
▦ 지난해엔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엔ㆍ달러 환율이 전년 100엔대에서 지난해엔 최고 120엔대까지 오르는 엔저(低)가 격심했다. 반면 원ㆍ달러는 전년 1,100원대에서 최저 1,007원까지 하락하는 원고(高)가 나타났다. 수출시장에서 한국차의 위축이 우려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ㆍ기아차가 지난해 미국에서 130만5,952대를 팔아 판매신기록을 갱신하고, 시장점유율도 거의 밀리지 않은 7.9%를 유지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자동차시장의 지난해 활황을 감안할 때 만족할 정도까진 아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서 한국차의 브랜드파워가 환율 악재까지 극복할 정도에 이른 것 같아 고무적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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