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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팔이" 그때가 좋았어?

입력
2015.01.0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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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가수들 대거 출연한 방송 프로 '토토가' 깜짝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영화 국제시장 등 과거 이야기·노래·물건 재등장

90년대가 어린시절 2030세대 반가움과 친근한 느낌 당연하지만

팍팍해진 현실 도피적 성격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과거는 미화되는 속성이 있다. 좋았던 시절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시절’로 부풀려 지고,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일도 '값진 경험'이나 '성숙의 밑거름'으로 예쁘게 포장되곤 한다.

그래서 추억을 재현한 ‘복고’는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다. 최근 MBC 인기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기획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이후 불고 있는 ‘토토가 열풍’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터보, 이정현, SES 등 90년대 스타 가수들을 한 자리 모은 토토가가 전파를 탄 뒤 추억의 가요들이 온라인 음악 차트를 ‘올 킬’한 것은 물론, 신촌과 대학로 등 젊은이의 거리에도 그 시절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고 그리워하는 것을 요즘 2030은 ‘추억팔이’라고 부른다. 한때 잘 나갔던 연예인들이 TV에 재등장해 과거 이야기를 하며 다시금 화제가 되는 상황을 두고 ‘추억을 판다’고 말하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토토가가 불러온 ‘추억팔이’ 열풍은 비단 노래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때의 이야기를 하고, 그 시절 물건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2030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도 읽힌다. 이미 지난 해 선풍적 신드롬을 몰고 왔던 TV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도 같은 정서가 발견됐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모든 세대가 갖는 공통된 정서이다. 때론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유도 필요하겠다. 하지만 과도한 과거 몰입이 현실도피 심리의 반영이란 평가도 나온다. 추억을 팔고 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90년대를 소환한다

직장인 배은지(26ㆍ여)씨는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주점을 찾았다. 1990년대 인기 곡을 틀어주고 춤을 출 수도 있는 이곳은 최근 몇 년 간 20~30대 사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평일에도 1시간 가량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토토가 이후 찾은 이곳의 인기는 가히 이상 열풍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들어갔다는 배씨는 “한때 무한 반복해 들었던 영턱스클럽, 베이비복스, 박진영의 노래를 다시 들으니 옛날 기분이 한껏 되살아났다”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같은 안무를 따라 해 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룹 GOD가 ‘완전체’로 재결성한 이후 종종 예전 노래들을 찾아 듣던 이화영(29ㆍ남)씨는 토토가 이후 본격적으로 '90년대 소환'에 나섰다. 초등학생 때 자주 먹던 불량식품을 찾아 사먹는가 하면, 구형 게임 '슈퍼마리오'를 구입해 즐기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90년대 초반 친구들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페미콤 게임기’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원에 구입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페미콤 게임기는 게임팩을 꽂아 다양한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기기. 이씨는 “어릴 땐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는데, 이제는 경제적인 여력이 생겨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선경(32ㆍ여)씨도 지난주 부산 고향집에 내려가 어릴 시절 갖고 놀던 미니게임기 ‘다마고치’를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이를 남자친구에게 선물했다는 이씨는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항상 지니고 다니던 물건을 다시 찾았다는 것만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라며 “최근 일본에서 들어온 요괴시계가 초등학생들에게 돌풍이라고 하는데 우리 어릴 적의 다마고치 열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8년 데뷔한 그룹 신화는 최근 팬클럽 ‘신화창조’(신창) 10기를 모집한다고 발표했다. 신화창조가 새 기수를 모집하는 건 2008년 이후 7년 만. 중학생 때부터 신화의 열성팬인 박모(25ㆍ여)씨는 정식 모집을 시작하는 D데이(9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박씨는 “어릴 때 함께 신창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연락해 신화 이야기를 하고, 그땐 많이 좋아하지 않던 친구들도 다시 모집한다는 소식에 관심을 가지더라”면서 “최근 토토가 때문에 분위기를 탄 것 같다”고 말했다.

왜 다시 과거일까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지금의 20~30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대변하는 90년대 문화에 열광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세대는 기본적으로 자기 세대의 감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오랜 시간 ‘과거형’으로 밀려났던 그들만의 문화가 다시 현실로 들어온 순간, 큰 반가움과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젊은 층 전반에 깔린 한국사회의 퇴행 인식도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90년대는 분명히 지금보다 더 희망에 차있었고, 취업 관문도 지금처럼 좁지 않았다”며 “더 자유롭고 밝았던 과거에 대한 일종의 현실도피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현실도피에서 기인했다는 말에 대해 취업준비생 이준범(30ㆍ남)씨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이 팍팍한 상황인데, 좋았던 시절의 기억을 꺼냈기 때문에 폭발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요즘 젊은 층은 당장 눈 앞에 놓인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보다 걱정이 적었던 시절 문화를 다시 찾으면서 위안으로 삼는 경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박모(31ㆍ남)씨는 2030의 추억팔이를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과 비교하기도 했다. 박씨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화한다는 점에서 토토가와 국제시장은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듯 2030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꿈이 많았던 90년대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국제시장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기성세대를 보며 반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있는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90년대를 미화하는 2030의 모습도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제 촉발한 2030의 추억팔이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이 민주화와 같은 정치이슈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90년대부터는 세계화와 뒤이은 IMF사태처럼 경제적 의제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된 90년대를 기반으로 한 문화는 일회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30이 현재의 결핍을 과거 문화를 향유하면서 채우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들은 돌아온 90년대 문화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희기자 shlee@hk.co.kr

정새미 인턴기자(이화여대 기독교학과 4)

박나연 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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