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일본 도쿄의 선샤인 크리에이션 행사장. 아마추어 만화 작가들의 축제인 선샤인 크리에이션을 찾은 수천 명의 만화 팬들 사이로 낯뜨거운 포스터와 상품이 눈에 띄었다. 10대 소녀로 보이는 만화 캐릭터들은 대부분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채 성행위를 암시하는 자세로 그려졌다.
행사 주최자인 히데는 “아동학대는 나쁘지만 아동과의 성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즐기는 것은 불법이 아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로리콘이 내 취미 중 하나”라고도 밝혔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줄임말인 로리콘은 근친상간, 강간 등 금기 또는 불법 성행위를 지시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BBC는 7일 일본 의회가 최근 아동 포르노물을 소지만 해도 징역형을 처하도록 강력한 규제법을 통과시켰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의회는 지난해 6월 아동 포르노 사진의 개인 소장을 금지하도록 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늦은 규제다. 일본은 1999년부터 아동 포르노 사진의 생산과 유포만 규제해 왔다.
당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18세 이하 캐릭터의 성적인 장면 역시 금지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논란 끝에 일본 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본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10대 소녀가 등장하는 성적인 만화가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일본에서 국회의원들도 수백만 명의 만화 팬들을 재판대에 세우기 꺼려졌을 것이라고 BBC는 분석했다.
아동 포르노물은 환상일뿐 현실과는 다르다는 게 팬들의 주장이지만 일각에서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도쿄 아키하바라의 길거리 서점에는 18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 성인 코너가 있다. 그곳에선 미성년자 강간과 같은 제목의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원은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 성적인 자극을 느껴도 금세 그에 익숙해진다”며 “그래서 그들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찾고 어리고 미성숙한 소녀들한테서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으로 상품화하는 현상이 일본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걸그룹이 수 많은 ‘삼촌팬’들 앞에서 공연하는 장면도 그 중 하나다. ‘섹스인더시티’ ‘도쿄 스타일’ 등의 작가 릴리는 이에 대해 “남성들이 요즘의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에게 지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 침체는 남성이 사회활동을 하고 여성은 가사를 하는 전통적인 가족상을 무너뜨렸다. 릴리는 “경제활동에 성공적이지 못한 남성들이 로리콘 만화의 환상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사람들의 환상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만화번역가인 가네미쓰 단은 “근친상간이나 강간 같은 소재는 불편하지만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을 검열하는 것이고 내 권한 밖이다. 다른 사람의 권리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환상을 가지는 것 자체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아동보호운동가 가나지리 가즈나는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일본을 비정상이라고 욕하지 않도록 바꾸겠다”며 아동 포르노물 근절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함지현 인턴기자(한양대 국문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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