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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기념사진은 '알록달록'

입력
2015.01.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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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생일상 2012.5.28
사랑의 생일상 2012.5.28

아이가 받아 안은‘사랑의 생일상’이 풍성하고 화려하다. 미국 디즈니社 캐릭터인 아기 곰 푸와 일본의 헬로키티는 물론 국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개죽이까지, 귀엽고 깜찍한 다국적 캐릭터가 총 동원돼 사진을 꾸미고 있다. 잔칫상을 한 층 돋보이게 만든 대형 꽃 장식이나 반짝반짝 조명 이미지도 사진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지난해 2월 이산가족상봉행사에 다녀 온 장모씨가 북한의 가족으로부터 받아 온 조카 손주의 사진이다. 알록달록한 컬러 사진들을 바라보던 장씨는“북한은 먹을 게 없어 굶는 사람이 많다던데 잔치를 이렇게 푸짐하게 하는 걸 보면 우리 누이랑 가족들은 그래도 먹고 살 만 한 가 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믿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잔칫상 위 싱싱한 청포도와 꽃 장식은 자세히 보면 조잡하고 현실감이 떨어져 합성된 이미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씨 조카 손주의 생일상에 차려진 음식은 떡과 국,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독상이 아닌 여러 명이 함께 먹는 공동밥상 머리에서 찍은 사진에 가짜 이미지를 이것저것 합성한 것이다. 소중한 가족의 생일날 늘 풍성하고 넉넉한 잔칫상을 바라는 것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을 터, 빈약하기만 한 상차림을 합성으로라도 채우고 꾸미려 한 노력이 눈물겹다.

우리가정 2013.4.15
우리가정 2013.4.15

이미지 합성이나 조작의 흔적은 다른 이산가족들이 받아 온 기념사진에서도 쉽게 드러나 보인다.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맞아 들에 나온 화목한 가족의 한 때 역시 인물만 빼고 죄다 가짜다. 북한의 4월 중순은 반팔 차림으로 들판에 나가기엔 아직 추울뿐더러 들꽃이 만개할 리도 없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기존 가족사진에 산뜻한 배경을 합성한 후 북한의 대표 명절인 태양절 날짜를 새겼을 가능성이 크다. 소위 말하는 ‘뽀샵질’이 북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준은 매우 낮아 보인다. 경성대 사진학과 오승환 교수는 “원본 사진의 촬영 데이터 없이도 그림자의 일관성이나 경계선의 선명도, 임계초점의 범위 등을 통해 조작 사실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을 정도”라며 “열악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 급조한 느낌이 드는 조작사진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행복동이 ㅇㅇㅇ 첫돌기념 2013.4.23
행복동이 ㅇㅇㅇ 첫돌기념 2013.4.23
왼쪽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내가 꽃인가봐, 내가 곱대요, 60은 청춘입니다.
왼쪽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내가 꽃인가봐, 내가 곱대요, 60은 청춘입니다.

북한의 가족들이 전해 준 기념사진 대부분에 기원문구 한 두 가지는 반드시 쓰여져 있었다. 자식이 귀하고 부모가 소중한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매 한가지, 우리 귀에도 친근한 단어들이 사진 위에 자주 등장한다. 자식의 돌이나 생일 사진에는 ‘행복동이’ ‘귀염둥이’ ‘사랑’ ‘엄마아빠’ ‘기쁨’과 같은 단어들이 많이 쓰였다. ‘내가 꽃인가 봐’ ‘내가 곱대요’ ‘나 1살’등 귀여움을 발산하는 문구들도 보인다. ‘오래오래 장수하세요’ ‘영원한 젊음을…’등에서는 부모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애틋한 마음도 읽힌다.

환갑 기념 사진에 쓰여진 ‘60은 청춘입니다’는 과거 김일성이 주민들에게 내린 ‘60 청춘, 90 환갑’이라는 교시와도 연관이 있다. ‘60은 한창 일할 나이’라며 제한해 온 환갑잔치를 요즘에는 묵인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북한의 경조사에 대해 7년 전 탈북한 임모씨는 “남한보다 북한 사람들이 경조사를 더 많이 챙긴다”라고 전했다. 임씨는 또 “웬만한 잔치 음식이나 중국산 과자는 장마당(시장)에서 구할 수 있지만 사진에 나온 대로 차리려면 돈이 꽤 많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환갑상에 올라온 넥타이 맨 술
환갑상에 올라온 넥타이 맨 술

탈북자 마모씨는 북한의 잔칫상 사진을 살펴보다 발견한 일명‘넥타이 맨 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싼 고급 술을 구하면 병을 버리지 않고 놔두었다가 소주를 색소와 함께 채워 경조사 때 고급 술인 것처럼 꺼내 놓곤 하죠”

북한에도 사진관은 있다. 군 소재지 정도면 크고 작은 사진관 몇 군데가 있는데 출장 촬영비가 그리 비싸지 않다고 두 탈북자는 전했다. 살펴본 기념사진 중 상당수가 합성인 것 같다는 의견에는 두 사람 다 동의하지 않았다. 기념 문구는 사진사가 넣어주지만 음식이나 배경은 모두 진짜라는 것이다. “설마 먹는 음식을 가짜로 합성 했겠어요? 가짜 음식 만들어서 상 차리고 생색내는 것은 남쪽이 더 심하잖아요”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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