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가며 10년 동안 쓴 시 34편... 노모와의 추억 등 인생 단상 그려 내
아들이 나서 삽화, 번역 도와 출간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다 할머니 임종을 놓쳐버린 소년의 안타까운 이야기, ‘나는 항상 늦네요(I’m always late)’. 나침반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의 심정을 담은 ‘산과 나(mountain & I)’
칠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10여 년 동안 삶의 흔적과 깨달음의 단상을 오롯이 담아 낸 창작 영어 동시 34편을 모아 전자책(e-book)으로 출간했다. 올해로 만 78세를 맞는 옥미혜 할머니. 옥씨는 지난달 성탄절을 앞두고 어른을 위한 영어동시집 ‘빈 간장독(the Empty pot of soy sause)’을 냈다. 옥씨가 미국에 사는 자녀들의 집을 오가며 10여 년 동안 틈틈이 써 온 영어 동시들이다. 한ㆍ영 병행판 외에도 ‘the biggest pencil in the world(세상에서 가장 큰 연필)’라는 이름의 영문 전용판으로도 동시 출간, 아마존 닷컴 등 유명 해외 유통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다.
옥씨는 ‘신여성’이다. 1950~60년대 경남여고를 졸업한 뒤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동시대를 살던 여성 입장에선 대단한 고등 교육을 받았던 셈이다. 지금도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대표작 ‘My heart leaps up(내 가슴은 뛰노라)’ 등은 원작으로 줄줄 외울 정도다. 옥씨는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문학과 어학에 관심이 많으셨다”며 “아무래도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며 웃었다.
부친의 친구이자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독려로 동시를 짓기 시작, 대학 재학 시절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에 입선했다. 이후 결혼 하고 전업 주부로 살면서도 틈틈이 한글 동시를 썼고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는 자녀들이 사는 미국을 오가며 꾸준히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2005년에는 미국 버지니아주 영어학당에서 본격적으로 영어동시를 짓기 시작해 70세였던 2007년에는 미주 한국아동문학가 협회가 주최한 ‘1회 미주 아동문학상’에서 ‘덩굴’이란 작품으로 입선하는 노익장도 과시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해 10월 97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와의 일화를 담은 ‘엄마가 가르쳐 준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2008년 90세 노모와 70세 딸이 오붓이 산책 하며 눈빛을 교환하던 감회를 적은 시다.
이렇게 써 내려간 영어 동시 작품이 모두 130여 편. 이를 정리해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에 국내 유명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때 나선 것이 신문기자 출신인 큰아들 노상욱(48)씨다. 노씨는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드는 ‘전자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노씨는 영어 동시를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삽화를 넣고 홍보 동영상까지 직접 제작해 첨부하는 등 ‘빈 간장독’ 발간의 산파 역할을 했다.
노씨는 “미국 워싱턴 기념비를 ‘세상에서 가장 큰 연필’로 표현하는 등 시상을 포착하는 뛰어난 감수성에 주목하면 시를 읽는 재미가 두배가 된다”고 말했다.
호응이 좋으면 종이책으로도 출간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영문판 홍보 동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려 외국인들의 반응을 유도할 생각이다. 영어동시 창작활동을 계속하는 건 물론이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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