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지난 1일 사망했다. 10여 년 전 한 일간지 기획에서 벡을 인터뷰했고, 그의 위험사회론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일흔이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왕성했던 연구 업적을 생각하면 더없이 안타깝다.
벡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일어난 촛불집회와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서 부각된 위험사회론의 적실성 때문이다. 그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현대사회의 중핵적 문제는 인간이 만든 위험(risk)에 있다는 것이다. 환경파괴 등과 같은 인위적 위험이 평등 대신 안전을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등장시킨다는 그의 테제는 설득력이 매우 높다.
위험사회론과 함께 내 시선을 끈 것은 그의 ‘개인화 테제’다. 현대사회가 성찰적 사회로 변화되면서 개인은 점차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만, 이 독립은 전문가에 의존하고 ‘인지적 주권’이 위협받는 새로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게 벡의 주장이다. 이제까지 사회적으로 규정됐던 인생이 스스로 구성해가야 하는 생애로 변화된다는 개인화의 증대는 위험사회의 도래와 함께 이른바 ‘제2의 현대성’의 대표적 징표라는 것이다.
벡의 개인화 테제는 지난해 신해철의 안타까운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신해철의 죽음은 특히 청소년 시절 그의 노래를 즐겨 듣던 3040세대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줬다. 신해철은 1980년대 386세대를 이은 90년대 초ㆍ중반 신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그가 남긴 말은 바로 개인화의 한국적 버전이었다.
‘네 멋대로 하라’는 신세대의 주장은 벡이 주목한 개인화 경향이 낳은 ‘자유의 아이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자유의 아이들은 전통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선물 받았지만, 동시에 위험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세우고 추구해가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신해철과 서태지의 노래로 상징되는 이러한 한국적 개인주의의 등장은,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영향력을 잃어갔다. 새롭게 발견된 개인이 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운명 앞에 무력해진 셈이었다.
2015년 새해를 맞이해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들이 적지 않다. 산업화 시대 30년과 민주화 시대 30년을 넘어서 광복 100년으로 향하는 미래 30년을 위한 시대정신과 국가전략을 모색하는 것에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난 광복 70년을 지탱해온 마스터 프레임은 새로운 ‘국가 만들기’였다. 그것은 빠른 시간 안에 앞선 국가들을 뒤쫓는 ‘추격 산업화’와 ‘추격 민주화’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 패러다임을 일대 쇄신해야 할 시점에 우리 사회는 도달해 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런 제도적 혁신과 더불어 요구되는 개인에 대한 재성찰이다. 지난 70년은 ‘국가의 시대’였다. 국가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었다. 국가의 발전은 나의 발전이었고, 국가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었다. 문제는 국가주의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궁극적 이유도 개개인 삶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삶의 행복이란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말과 생각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 있을 터인데, 국가란 이를 위한 조건이지 그 목표는 아니다.
광복 70년을 맞이해 이제는 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게 바람직한지를 사유해 볼 때가 됐다.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국가로부터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더 많은 자율,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풀뿌리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강한 국가, 약한 사회’로는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자발성과 신뢰로 무장된, 이런 자율적 개인에 기반한 ‘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
국가 없는 개인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 없는 국가 역시 무의미하다. 광복 70년을 맞이해 우리 사회에 부여된 또 하나의 과제가 국가와 개인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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