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엔 색인을 달아둬야 한다. 기억 도서관 장서는 무수하다. 해서 너무 찾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 전말은 덜 쓰였다. 상당 부분이 감춰진 이야기다. 비극 종식을 누가 방해하나.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새해의 목표와 각오를 다지기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안에 기대는 게 편해졌다. 신년의 다짐은 어차피 쉽게 잊힐 것이고, 지난 일과 지날 일에 연연하지 않는 게 그나마 인생의 지혜라고 여겼다. 그러나 을미년 새해를 맞으면서, 잊을 뻔했던 지난 2014년이 다시 묵직하게 가슴에 와 얹혔다.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이었다. 새해 첫 날 안산시 단원고 2학년 교실의 풍경은 참사의 비극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희생된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그들을 기리는 사진과 꽃다발, 유품, 인형, 메모 등이 가득했다. (…) 이 광경을 보자니 지난해 봄의 고통과 아픔이 되살아났다. (…) 연말 한 방송사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을 거부한 탤런트 최민수의 세월호 언급에 희생자 유족들은 깊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많이 잊었거나 심지어 지겨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만큼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 세월호 참사는 애초에 충격적인 국민적 비극이었다. 여야가 정치 쟁점화하면서 이념 갈등에 휩싸이고 단식 유족들 앞에서의 폭식 투쟁 같은 논쟁거리가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황망한 304명의 희생에 함께 울었다. 선사의 탐욕과 관료와의 유착이 이토록 생명을 하찮게 여길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함께 반성했다. 곳곳에 널린 안전불감증을 이제는 개선해야 한다고 함께 열망했다. 그 일은 이제 시작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달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수명 정도로 그칠 수도 있었을 피해가 왜 300여명으로 커져야 했는지, 선박 운항과 관리가 어떻게 그토록 위험한 지경으로 방치됐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고, 책임을 묻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들을 보살펴 더 이상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바다에 잠겨 있는 세월호 인양과 남은 실종자 수색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처음에 온 국민이 그러했듯이 아까운 목숨에 대한 연민과 반성,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 진상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 일은 다시 정치 쟁점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 때마다 인간의 비극을, 희생자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자. 바로 이것이 2015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일이다.”
-새해, 잊을 것과 기억할 것(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희원 사회부장) ☞ 전문 보기
“나는 본래 어둡고 오활하여, 폐구(閉口)로 겨우 일신을 지탱하고 있다. 더구나 궁벽한 갯가에 엎드린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 만한 식견이 있을 리 없고, 이러한 말조차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하되, 잔잔한 바다에서 큰 배가 갑자기 가라앉아 무죄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가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차고 어두운 물 밑에 버려둔 채 새해를 맞으려니 슬프고 기막혀서 겨우 몇 줄 적는다. (…) 300명이 넘게 죽었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몸이 물 밑에 잠겨 있지만 나는 이 많은 죽음과 미귀(未歸)를 집단으로 한꺼번에 슬퍼할 수는 없고 각각의 죽음을 개별적으로 애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민이의 6만원, 물에 젖은 1만원짜리 6장의 귀환을 통절히 슬퍼한다. (…) 죽은 많은 아이들의 용돈도 다들 물에 젖어서 돌아왔을 것이므로 그 많은 꿈들은 슬픔과 분노로 바뀌어 바다를 덮는다. (…) 큰 배가 스스로 뒤집혀서 가라앉게 되는 배후에는 대체 얼만큼 악과 비리가 축적되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담요를 말아서 창문 틈을 막다가 죽은 아이들과 정치적ㆍ행정적 시스템과의 그 참혹한 단절은 어찌 된 영문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 갑판에 과적을 함으로써 무게중심을 위로 끌어올렸고, 배 밑창의 평형수를 빼버려서 배의 중심을 허깨비로 만들었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인가. 이것은 원인이라기보다는 침몰 그 자체다. 이것이 침몰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배가 뒤집혀지니까 가라앉았다는 말과 같다.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 2014년 4월 16일의 참사 이후로 사태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각은 발작적인 분열을 일으키며 파탄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간직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동력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시각과 그 슬픔과 분노를 매우 퇴행적인 소모적인 것으로 여겨 혐오하는 시각이 교차했다. (…)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과 그 모든 배후의 문제를 다 합쳐서 세월호 제1사태라고 한다면, 제1사태 직후부터 이 나라의 통치구조 전체가 보여준 붕괴와 파행은 세월호 제2사태다. 이것은 또 다른 난파선이다. (…)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 우리는 새로 생기는 위원회를 앞세워서, 세월호를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 위원회가 동어반복으로 사태를 설명하지 말고 그 배후의 일상화된 모든 악과 비리, 무능과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공생관계를 밝히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주기 바란다. (…) 나는 사실 안에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세월호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서 빠져 죽어… 사실의 힘에 의해 슬픔과 분노, 희망의 동력으로 바뀌기를(1월 1일자 중앙일보 ‘새해 특별 기고’ㆍ소설가 김훈) ☞ 전문 보기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야 강은 서지 않는다. 새 시대정신이 등장할 때 역사도 전진한다. 미래 위한 희생은 과거 숙명이다. 생색에 주려 기어이 뻗대다간 황혼마저 퇴색하는 법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노인이 된 덕수는 자신의 점포인 ‘꽃분이네 가게’를 절대 안 팔려 한다. (…) 10살이던 1ㆍ4 후퇴 때 피난지 첫 밤을 보낸 곳이고, 가족을 먹여 살린 덕수의 분신과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곳이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덕수 삶의 목적은 ‘꽃분이네 가게’가 아니라 ‘가족’이었고, ‘꽃분이네 가게’는 ‘가족’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가 아니어도 우린 종종 수단과 목적의 전도 현상을 보게 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2일 시무식에서 ‘충’을 말했다.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라 했지만, 이때 충이란 “대통령님께 걱정 끼친 일들”에 대한 반성이란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주군에 대한 ‘충’ 그 자체가 목적인 건 조선시대에 끝났다. 군사정부는 충성 대상을 ‘국가’로 대체했다. 하지만 국가란 ‘개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든 기구다. 이 ‘기구’를 우상화해 충성을 맹세케 하는 건 전체주의 국가의 일반 유형이다. 굳이 충성을 맹세하려면 그 자리는 ‘국가’가 아니라 차라리 ‘이웃’(사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비서실 훈화 말씀을 비서들에게 얘기했으면 됐지, 뭣하러 대변인을 통해 ‘국민’에게까지 알렸을까? 국민도 대통령께 충성하라는 건지, 우리 이리 고생하는 걸 알아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국제시장’에 60대 이상 노년층이 성원을 보낸다.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겠지만, 내 ‘희생’을 알아달라는 자기연민이 담겨 있는 듯하다. 결은 다르지만,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로부터 해산 결정을 당한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도 이 정서가 느껴진다. (…) 그 시절 운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통합진보당 인사들, 많은 희생을 한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목적에 나의 희생이 겹쳐지면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 내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이 강하면, 다른 모든 게 정당해지고, 사소해질 수 있다. ‘신념의 정치’는 그래서 위험하다. 덕수는 영화 말미에 가게를 팔 것을 허락한다. (…) ‘꽃분이네 가게’는 이제 팔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팔 기회를 놓쳤고, 청와대는 기회가 남아 있다. ‘충’을 말한 인사가 꽃분이네 가게다.”
-‘꽃분이네 가게’를 팔아야 한다(한겨레 ‘편집국에서’ㆍ권태호 정치부장) ☞ 전문 보기
“‘국제시장’은 아버지, 여동생과 헤어져 월남한 한 남자가 독일에 광부로 파견되고 다시 월남전까지 갔다 오면서 어렵게 살아온 인생 이야기다. 고생은 했지만 예쁜 여인과 결혼하고 버젓한 자식과 손자까지 두었으니 역경을 이긴 한 남자의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것만으로도 합당한 인과관계 없이 때리고 죽이고 바람 피우고 옷 벗기는 영화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인공 같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정도 살 수 있게 됐다고 은근히, 그러면서도 힘주어 말하는 듯해 불편하다는 관객이 적지 않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이 이렇게 고생했고, 그 고생을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 해서 다행이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들으라는 듯 참 힘들게 살았다고 되뇌는 것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젊은 영화 관객에게 하고 싶은 그 세대의 요구로 들린다. 그러나 1950, 60년대를 어렵게 살았다고 해서 모두가 ‘국제시장’에서처럼 “내가 고생을 참 많이 했다”는 식으로 표나게 말하지는 않는다. (…) 영화 주인공 덕수처럼, 아니 그보다 더 곤궁하게 살고도 후손의 삶이 나아졌다면 거기서 만족하고 보람을 찾았지 그게 자기 혹은 자기 세대 때문이라고 쉽게 공치사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 혹은 자신 세대의 공덕을 앞세우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 자칫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올드 보이들이 잔뜩 귀환한 청와대 등의 세대 역류 현상을 목격하면서 그것이 역동성과 창의성과 참신성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실감하고 있다. 근대화 시대의 주역을 자처하는 세대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 또한 크다.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기회가 봉쇄된 채 주눅든 젊은이들의 좌절은 절대 작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실버 세대는 자신들의 노고를 새삼 알리려 할 게 아니라 젊은 세대가 꿈을 펼 수 있도록 자신들의 지혜와 안목을 나눠주어야 한다.”
-“힘들게 살았다”는 주인공의 독백(1월 3일자 한국일보 ‘메아리’ㆍ박광희 부국장 겸 문화부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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