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최고 권위의 옥관문화훈장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 활동
문화재 관련 조사 학술 연구
대국민 홍보와 캠페인도
우병익(82) 신라문화동인회 전 회장이 지난달 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화재청 주관으로 열린 ‘2014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식’에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재 전문기자이기도 했던 그는 취재 현장의 열정이 없었다면 훈장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팔순이 넘어 우리나라 문화계 최고 권위의 옥관문화훈장을 받은 그로부터 문화유산에 얽힌 평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_옥관문화훈장은 문화유산보호 유공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포상이다.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평생을 문화동인회에서 활동하면서 문화재 보호 실천을 생활화한 것이 주위에 알려진 것 같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상은 신라문화동인회 전체 회원들을 대표로 받은 상으로 생각하고 남은 여생을 문화유산보호를 위해 헌신하겠다.”
_신라문화동인회 활동 중 가장 기억나는 일은.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와 신라문화동인회가 상호 협력하고 있다. 해외반출 문화재 환수활동과 문화재 관련 조사 학술연구 활동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대국민 홍보와 캠페인을 함께 펼치는 등 긴밀한 문화재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2013년 10월부터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의 전국 회원 2,600명과 신라문화동인회원 500명이 가세해 분야별로 활동하고 있다.”
_신라문화동인회는 어떻게 창립됐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나.
“1961년 경주 출신의 문화재 인사들이 만든 지역 최초의 문화동호회다. 첫 사업으로 ‘박물관어린이학교’를 만들어 지역 어린이들에게 신라문화를 비롯한 문화재 바르게 알기 교육을 했다. 이 학교는 매주 목요일 문화재 해설의 밤과 매월 3째주 일요일 문화유적답사를 하고,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1박2일 일정으로 타 지역 문화재 탐방에도 나서면서 어린이와 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해설사들도 양성하면서 문화유산 보호를 다각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_기자였는데 어떻게 신라문화동인회에 참여했나.
“신라문화동호인회가 태동된 지 1년 뒤인 1962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경주와 포항, 울산, 영덕, 울진 등 동해안 담당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재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문화재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회원들과 활동하면서 문화재를 많이 접했다. 전국의 문화재 발굴조사와 보존관리 현장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취재했다. 신문사의 배려도 컸다.”
_주로 어떤 기사를 썼나.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인 신라문화권의 문화재 기사를 주로 다뤘다. 울주군 ‘천전리 암각화’와 천마총으로 유명한 경주 155호 고분의 금관출토, 문무대왕 수중릉 등을 당시 특종 보도했다. 천전리 암각화의 경우 문화 관련 취재원들과 ‘반고사’라는 절터를 동행했다 기대 이하여서 실망하던 차에 인근 암벽에 이상한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마을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꿩 대신 봉황을 잡게 됐다. 동국대 황수영 박사와 함께 일주일 동행 취재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_천마총 금관출토 기사도 마찬가지로 대단한 특종인데.
“1973년 경주 신라문화재에 참석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주에서 가장 큰 규모인 98호 쌍둥이 고분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발굴 경험이 없었던 우리나라 고고학자들이 시험삼아 규모가 비교적 작은 155호 고분을 발굴했다. 이 과정에서 그해 4월6일 화려한 금관과 말안장에 붙여 흙 튀김을 방지하는 ‘말다래’에 그려진 멋진 천마도까지 수확했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인부의 제보로 ‘신라왕의 금관이 나왔다’는 기사를 특종할 수 있었다.”
_문화재 기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한국일보는 당시 문화재 전문가들로 신라 오악(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팔공산, 태백산) 학술조사단과 신라 삼산(경주 낭산, 청도 혈예산, 영천 골화산) 학술단을 꾸렸다. 팔공산을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간 조사단에 참여해 안목을 넓혔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한국일보는 독자들을 위해 취재활동에 상당한 투자와 전문성을 동원한 것 같다. 문무대왕암도 조사단원인 정영호 박사가 사각형 골호(뼈 항아리)를 발굴, 말로만 떠돌던 수중릉임을 확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연히 이 기사는 한국일보 1면 톱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_문화재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경주를 평가해달라.
“경주에는 천년고도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하지만 옛 것들이 잘 보존될때 진정한 고도인 것이다. 최근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조례까지 바꿔가면서 스카이라인을 높이고 있다. 천년의 고도가 고층 빌딩 숲에 둘러쌓여 흉측하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김성웅기자 ksw@hk.co.kr
●약력
경주공업고 졸업
한국일보 기자
연합통신 기자
신라문화동인회 4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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