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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시장 속의 숨은 이야기

입력
2015.0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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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 밀려 축소되고 있는 시장, 그것도 부산에 있는 작은 시장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이다. 정치인들이 앞다퉈 영화를 관람하면서 많은 화제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 국제시장이 주목받는 것일까? 스토리가 창의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바타’ 처럼 영화에 도입된 새로운 기술 때문일까? 모두 아니다. 국제시장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하다. 국제시장 속의 이야기는 우리가 실제로 겪은 우리의 삶이기에 우리의 모습이 곳곳에 녹아있다.

국제시장은 1940년대에서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덕수라는 한 실향민의 생애사인데, 그의 삶에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것은 대한민국을 반토막으로 자른 분단의 비극에서 그가 가족을 위해 치른 희생이 너무나도 숭고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을 깬 한국전쟁으로 평화를 찾아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난 오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어버리자 어린 장남이 가장이 된다. 국제시장은 어린 가장이 가족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며 가족을 지켜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덕수는 공부 잘 하는 동생의 대학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 광부로 취업해 가서 온몸에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탄광이 언제 붕괴될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 일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꿈을 펴기 위해 해양대학에 도전해 합격하지만 막내 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시 월남행을 선택한다. 전쟁터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무기없이 전쟁하는 것과 다름없는 위험한 일이지만 덕수는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었다. 결국 덕수는 전쟁터에서 다리 한쪽을 잃고 장애인이 된다. 국제시장은 분단이 만든 가난을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장애에 대한 부분은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전쟁 중의 국제시장 전경을 보여주며 다리 한쪽을 잃은 청년이 지나가는 모습이 잠시 나타났지만 전쟁이 양산한 장애인의 처참한 모습은 간과했고, 덕수가 몸의 일부를 잃고 겪어야 했을 불편과 사회적 편견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숨은 그림찾기처럼 웃음을 준 인물들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대단히 크다. 구두를 닦고 있는 덕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 청년 정주영은 자신있게 자신의 꿈은 큰 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현대조선소를 세워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을 일으켰다. 덕수가 성장했을 때 시장에 옷감을 사러 온 앙드레 김에게 남자가 무슨 여자 옷을 만드냐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가 된다. 그리고 덕수가 월남에서 만난 남진은 한국 가요를 화려하게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덕수는 이들처럼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되지 못했지만 분단이 만든 이산의 아픔과 가난을 짊어지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장애를 갖게 됐을지라도 살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의 풍요를 이뤄낸 한국의 저력을 상징한다.

국제시장이 우리에게 보여준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는 친구다. 덕수 옆에서 그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달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요즘의 친구는 심심풀이 상대이고 반드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우정이 아닌 경쟁심만 잔뜩 갖고 있지만 그 시절의 친구는 함께 가야 할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 이끌어주며 행복을 묶어주는 밧줄과 같은 존재였다.

국제시장은 고단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으로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예술인으로서는 슬픈 일이다. 국제시장은 덕수가 겪은 세상이지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에 간 동생이 겪은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무엇 무엇이 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은 영화예술을 감상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우리 아버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선진국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영화로 받아들이면 된다. ‘가족이 잘 살면 나라가 발전한다’는 영화의 메시지로 2015년 국민 모두 잘 살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며 나라 사랑을 했으면 한다. ‘국제시장’의 숨은 진짜 이야기는 ‘가족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는 것이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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