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후에 개봉될 서울캡슐
해저는 타임캡슐의 보고
바다 밑 고선박에서 새 지혜를
몸에 좋은 약은 써서 삼키기 힘들다. 이런 약을 먹기 좋게 작은 용기에 넣은 것을 캡슐이라 한다. 만약 그 안에 시간 기록을 담는다면 타임캡슐이 된다. 타임캡슐은 당대의 기록이나 물품을 담아 후대에 전할 목적으로 만든다. 타임캡슐을 지하에 묻었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꺼내면 과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타임캡슐을 기억상자라 하는 이유이다.
1939년 뉴욕 플러싱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때 타임캡슐이 처음 만들어졌다. 부식에 견딜 수 있도록 특수합금으로 만든 어뢰처럼 생긴 용기 속에 당시 문화를 대변하는 신문과 영화필름, 그리고 일상생활에 사용되던 물품 등 100가지가 넘는 것을 넣어 땅속 150㎙에 묻어놓았다. 이로부터 5,000년이 지난 6939년에 이 타임캡슐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서울이 수도가 된지 60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600점의 물품을 타임캡슐에 넣어 서울 남산 아래 자리 잡은 한옥마을에 묻었다. 이 기억상자는 400년 후인 2394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타임캡슐은 바다에서 많이 발견된다. 일부러 바다에 묻어놓은 것은 아니다. 짐을 싣고 항해하다 거친 풍랑을 만나거나 암초에 부딪쳐 침몰한 선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 잘 발달한 갯벌에는 오래 전 가라앉은 고선박이 발견되곤 한다. 그 안에는 보물보다 값어치가 있는 유물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런 고대 선박을 해저 보물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갯벌에서 유난히 잘 보존된 해저유물이 발견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갯벌 흙은 입자가 아주 고와서 그 안으로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므로 갯벌 깊숙한 곳은 산소가 없는 무산소 환경인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서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미생물이 살 수 없다. 유물이 미생물에 의해 훼손되지 않으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인양돼 공기 중에 노출되면 부식이 시작되므로 해저유물을 발굴하면 바로 보존처리가 필요하다. 바닷물에 잠겼던 유물이 마르면서 생기는 염분 결정은 유물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염분을 제거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진행된다. 그런 후에는 유물 표면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바다 속에는 따개비처럼 어린 시기에는 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 생활을 거치다가 단단한 표면에 달라붙어 사는 저서생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떨어져나간 곳이나 깨진 곳을 복원하는 작업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유물은 새로 태어나게 된다.
얼마 전 충남 태안군 마도해안에서 조선시대 백자가 인양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6월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해 침몰 고선박을 발견하고, 조선 시대 백자 111점을 인양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정밀 조사가 이뤄진다고 한다. 태안 해역은 조류가 빠르고 안개가 자주 끼며 암초와 모래톱이 많아 예로부터 항해하던 배가 사고를 자주 당했다. 필자도 해양 환경조사를 하면서 짙은 해무에 갇혀 오리무중이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마도 4호선은 이전에 태안 해역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선박인 태안선과 마도 1~3호선에 이어 다섯 번째로,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안 해역은 현재까지 3만점이 넘는 유물이 발굴된 그야말로 값진 타임캡슐인 셈이다.
해저 보물선을 찾는 데는 해양과학기술이 한몫을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 다중음향측심기, 측면주사음파탐지기, 해저지층탐사기 등 해양 탐사장비들이 해저유물을 찾는데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장비는 기본적으로 소리를 발생시켜 반사돼 오는 소리를 이용해 해저에 놓인 물체를 찾아낸다. 메아리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체가 확인되면 얕은 바다라면 잠수부가, 깊은 바다라면 심해 잠수정을 이용해 정밀 조사를 한다. 울릉도 인근에서 러일전쟁 당시 침몰한 돈스코이호를 찾은 것도 이런 해양과학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 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이다. 새해 벽두에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본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ㆍ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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