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시리아 난민 소극 구조하자 수명 다한 배에 태운 뒤 바다서 도주
인명 사고는 피하며 돈 버는 꼼수, 경비 줄이려 물·식사도 제공 안해
지난 2일 밤 낡은 수송선 한 척이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코리글리아노 칼라브로에 도착했다. 한 눈에 봐도 폐선을 눈앞에 둔 이 배, ‘이자딘’호의 용도는 가축수송이다.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 국적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를 떠돌다 아이슬란드 배에 발견됐다. 배에는 가축 대신 사람이 가득했다. 승선한 359명 중 54명이 여성이었고 74명이 어린이였다. 임신부도 있었고 보호자 없는 아이도 여덟이었다. 대부분 시리아 난민이었다. 4년 동안의 내전으로 고통 받다 새로운 삶을 찾아 유럽 행을 택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밀입국업자에게 돈을 주고 배에 탔으나 망망대해에 이르자 선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국 가디언과 CNN 등은 유럽 각국이 시리아 난민 구조 방식이 변하면서 밀입국업자들의 수법도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밀입국업자가 폐선 직전의 배를 구입해 돈을 받고 난민을 태운 뒤 난민이 탄 배를 바다 한 가운데 버려 수익을 챙기는 신종 수법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자딘호의 이동 경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항해자동인식장치가 작동하지 않아서다. 시리아 난민을 태운 배들이 출항하곤 하는 터키 남단 메르신이 출발지로 여겨질 뿐이다. 메르신은 시리아의 라타키아와 페리로 연결돼 있다.
이탈리아 경찰에 따르면 이자딘호에 탑승한 난민들은 1인당 4,000~8,000달러를 지불하고 배에 올랐다. 밀입국업자들이 이렇게 챙긴 돈은 총 300만달러다. 이자딘호 구입비를 제외하면 밀입국업자들이 180만달러는 남겼을 것이라고 가디언은 추산했다. 가디언은 “밀입국업자들이 보통 10만~15만달러를 주고 수명이 다한 배를 산 뒤 수백명의 난민을 태운다”고도 전했다. 선박기록에 따르면 74m 길이 이자딘호의 건조연도는 1966년이다. 밀입국업자들은 경비를 줄이려 물도 식사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자딘호 ‘승객’대부분은 5일 동안 굶었다. 밀입국업자들은 터키 범죄집단과 연계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령선형 밀입국’주선은 이자딘호가 처음이 아니다. 30일 몰도바 국기를 달고 지중해에서 발견된 ‘블루스카이 M’호도 이자딘호와 비슷했다. 796명이 탄 이 배도 선원이 사라진 채 지중해를 떠돌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됐다. 탑승자 대부분은 시리아인이었다.
시리아 난민 등의 지중해를 통한 대량 유입은 유럽의 주요 이슈 중 하나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들어오려던 난민 중 3,500명이 사망했고 20만명이 구조됐다. 난민을 적극 수용하던 유럽은 난민이 늘어나자 소극적인 대처로 정책을 바꿨다. 이탈리아는 한 달에 1,200만달러가 들어가는 ‘마레 노스트럼’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난민 구조에 나섰다가 최근 유럽연합(EU) 이민국에 업무를 이관해 국경 경계 위주로 업무를 전환했다. 가디언 등은 유럽 국가가 난민구조에 소극성을 띠자 해안경비대가 배를 견인할 수 있는 지점에 난민을 방치해 어쩔 수 없이 난민을 구조하도록 밀입국업자들의 수법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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