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난 수위 높이며 대남비방 중단, 남북관계 통해 돌파구 모색 나설 듯
북한이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에 맞서 대미 비난수위를 높이면서도 남측을 향해선 대화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대외정책 기조를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봉미통남(封美通南)’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4일 외무성 대변인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문답을 통해 “미국이 우리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와 달리 노동신문을 비롯한 온ㆍ오프라인 매체들은 연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언급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1일 신년사 발표 이후 나흘째 대남비방을 중단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 의도가 깔려 있다. 우선 미국과의 긴장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인식이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6자회담에 복귀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는 방식을 추구해왔다. 지난해 억류 미국인을 석방한 것도 화해 제스처였다.
하지만 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와 무시를 거쳐 이번에는 아예 제재를 강화하는 강경책을 취하면서 북한의 고민이 커졌다. 가뜩이나 인권문제로 미국과 정면으로 맞붙던 차에 이번 행정명령까지 겹쳐 북한의 대미정책은 좀더 경직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한이 대화의 손을 내미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북제재를 발동함에 따라 ‘미국을 상대하는 것이 만만치 않구나’라는 북한의 위기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민족끼리’를 앞세워 위기에서 벗어나는 수법이다. 관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대화 의지를 얼마나 확고히 밝히는지에 따라 북한의 행동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대화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덜컥 대화에 나서기 보다는 우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주기를 기대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미국의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얼마나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끌고 갈 수 있는지 시험하려는 목적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대화의 공을 남쪽으로 넘긴 상태”라며 “미국의 대북제재로 대화 재개를 위한 확신이 더 필요해진 만큼 우리측이 추가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통미봉남의 대외전략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서는 듯하다가 판을 깬 전례가 적지 않은 만큼 최근의 대남 유화 제스처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전술 차원의 수정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