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생모의 거처 덕안궁 터 1980년 일부 철거 문화재 가치 없어
지상은 역사문화공원 조성 쉼터로 지하는 광화문 광장과 연결 추진
덕수궁은 조선시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 후 기존 왕궁이던 경복궁을 대신해 머물던 황궁이다. 일제는 그러나 1910년 8월 대한제국 강제병합 직후부터 대한제국의 회복의지를 꺾기 위해 덕수궁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1912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부터 시작된 길(현 세종대로)과 덕수궁 앞길(현 태평로)을 직선으로 잇는다며 지금의 서울광장 서편 끝자락 부근까지 차지했던 궁의 면적을 줄였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이 현 위치보다 20여미터 앞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제는 또 1937년 덕수궁 터에 지상 4층 규모의 조선 체신사업회관(현 국세청 남대문별관)을 지어 외부에서 석조전 등 궁 내부를 볼 수 없도록 했다. 문득 덕수궁을 바라보며 대한사람들이 갖게 될 망국의 한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서울시가 중구 정동 덕수궁 터에 지어진 현 국세청 남대문별관을 완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한다. 공원 지하는 서울시청까지 이어져 시청 지하 시민공간인 ‘시민청’과도 통하게 된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청 세종대로 맞은편(서울시의회 옆)에 위치한 국세청 남대문별관은 올해 상반기 철거가 시작돼 내년 상반기 공원화된다. 공원은 지하와 연결된 선큰(sunken) 형태로 조성돼 2017년 상반기까지 세종대로 지하공간과 지하철 1호선 시청역(현 4번 출구), 서울시청 지하공간인 ‘시민청’이 모두 통하게 된다.
시는 공청회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건물의 철거를 결정했다. 지난해 4월 문화재위원현장조사에서 건물은 일제의 건축 의도와는 별개로 근대 건축물의 문화재적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1937년 지어진 연면적 2,551㎡ 규모의 이 건물은 1980년 태평로 확장과 함께 일부가 철거되는 등 이미 원형 보존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또 구관과 신관에 계단과 화장실 등이 각각 별도로 존재하는 등 시청사 별관 등으로 사용하기에도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철거에 대한 역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자문위원인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경복궁의 정기를 끊으려 지은 건물이 과거 조선총독부라면 덕수궁 정기를 끊으려 한 건물은 조선 체신사업회관”이라며 “이 건물은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귀인 엄씨의 거처인 덕안궁 터에 지어졌다”고 말했다.
건물 철거 후 지상은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된다.
지하에는 해당 장소의 역사적 의미 회복을 위한 공간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시는 이를 위해 올 상반기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건물 지하의 구체적인 용도를 정할 계획이다. 또 건물지하~세종대로 지하구간~서울시청 지하를 이어 사실상 시민청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다.
이성창 서울시 공공개발센터장은 “이번 사업은 서울시 소유의 청와대 사랑채와 국세청 소유인 남대문 별관을 정부와 서울시가 올 3월 맞교환 하기로 결정하면서 진행하게 됐다”며 “사업이 마무리되면 차후 광화문광장 지하와 연계하는 방안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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