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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저걸 피워? 말어? 새해 결심은 설날부터 지킬랍니다

입력
2015.01.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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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매다가 쉬면서 피우는 담배는 영양제 역할해도 슬슬 끊어야...

새해맞이 시골 풍경은 농악 소리로 시작된다. 을미년 새해가 열린 2015년 1월 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남 구례읍 봉성산 정상에 오른 주민들이 농악대의 흥겨운 가락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구례군청 김인호씨 제공
새해맞이 시골 풍경은 농악 소리로 시작된다. 을미년 새해가 열린 2015년 1월 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남 구례읍 봉성산 정상에 오른 주민들이 농악대의 흥겨운 가락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구례군청 김인호씨 제공

창문이 훤하다. 2015년 첫 날 떠오른 나의 첫 해는 중천에서야 발견됐다. 지금 저 해는 중국 북경쯤에서 솟아오른다며 좋아할 그 태양이다. 흐린 하늘이면 덜 속상하련만 눈이 내린다던 날씨는 화창하기만 하다. 어째서 매년 1월1일은 이래야 하는지. 왜 올해도 술에 쩔어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다가 침대 이불 속에 누워있는 초면의 여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해를 바라봐야 하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전날 서울에서 달려온 친구들과 나라 걱정하며(?) 밤을 지샌 탓이다. 새해부턴 달라지겠다고 맘 먹은 게 많았는데.

건강해지기로 했다. 이제 내려온 지 햇수로 5년 차가 된다. 실제로는 만 3세의 애기이지만 우리 나이로 5살이 되는 아이 정도 되는 셈이다. 뭐가 좋고 나쁜지 알아먹을 때가 됐다는 얘기다. 건강이 나빠진 건 아니지만, “사람 몸에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물이랑 공기야. 젤 많이 먹고 살거든. 그러니까 여기가 좋은 데지.”라고 떠들며 살 수 많은 없다. 물 만큼 술도 많이 마시고, 공기엔 의도적으로 니코틴과 타르를 섞어서 흡입하니 말이다.

귀농을 결심하면서 담배도 끊기로 했었다. 도시에 살면서 담배 피우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건 ‘나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이오’ 하는 표시였고, 어디 잠깐 서서 흡연을 시도한다 해도 바람 방향과 행인의 흐름, 내뿜는 타이밍 등을 봐가며 감행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사 초기, 의자를 넘어지기 직전까지 뒤로 제친 채 책상 위에 다리를 얹고, 콧구멍으로 연기를 조금씩 흘리며 한쪽만 찡그린 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는 선배들이 그렇게 멋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담배소지자 내몰기 작전이 시작됐다. 처음엔 깨끗한 소파가 마련된 휴게실로 안내하고, 조금 지나선 전망 좋은 옥상으로 보내더니 막판엔 조명이라고는 비상구 표시등 밖에 없는 음침한 외부계단도 고마워해야 했다. 그곳에 서면 홍콩 느와르 영화 조연쯤의 감정에 몰입되곤 했다.

하지만 내려와서 보니 이곳은 흡연천국이었다. 거침없이 연기 내뿜지 못할 곳이 없고, 나를 괴물처럼 훑어보는 행인도 없었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엄니 여 재떨이 하나 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어색함이 없는 곳이었다. 담배를 다시 물었다. 담배를 끊을 이유가 없었다. 금연을 결심했던 이유가 내 몸 생각해서가 아니라, ‘증말 더러워서 안 피우고 만다!’는 게 이유였는데 이곳은 흡연자에게 깨끗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공기가 좋으니 담배 맛도 좋았다. 일하다가 피우는 맛도 별미였다. 밭 매다가 힘들어도 ‘이 고랑 마치고 쉬면서 한 대 빨자’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영양제 역할도 했다.

담배를 끊기로 한 지금도 건강에는 정신을 못 차렸다. 주된 이유는 남들과 같은 담뱃값 부담이다. 아들이 티셔츠 하나 사달라고 하면 “선재야, 어떻게 입고 싶은 것 다 사 입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살겠니. 그러면 짐승이지”라고 타이르면서 나는 빨고 싶은 것 다 빨며 살아왔다. 벼락을 맞아도 싼 행태였다. 정부 덕분에 정신 좀 차려보려고 한다. 지리산을 향해 연기 뿜으며 1년에 150만원 가까운 돈을 날리기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다. 월 15만 원짜리 정기예금을 들고 말거다.

술은 사실 끊을 생각이 없다. ‘적당히 마시면 약’이라는 주(酒)님에 대한 믿음도 굳건하다. 회사 생활 할 때보단 횟수도 많이 줄였다. 그때는 점심 먹다가 상 위의 국물만 보면 ‘각1병’을 외쳐대곤 했다. 하루라도 술을 거르면 몸도 마음도 찌뿌듯했고, 반주는 불로장생의 지름길이라는 가르침도 기꺼이 몸으로 학습했다.

그때만큼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그 ‘적당히’가 어디쯤인지 모르겠다. ‘아하! 이 만큼이 적당히구나’ 해본 적이 없다. 술자리는 줄었으나 한번에 마시는 술은 예전보다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이곳 술자리 대부분은 만민평등을 구현하는 자리이다. 무조건 원샷에 내가 열 잔 째이면 너도 열 잔 째임이 분명하다. 주량이 다른데 그럴 수 있느냐 하겠지만 나도 그게 이상하다. 얼추 술이 센 사람 쪽으로 맞춰진다. 물론 이렇게 마시면 술자리가 일찍 끝난다는 장점도 있긴 하다.

“소주잔이 요로코롬 생긴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여. 오랜 세월 검증해 봉께 한 번에 탁, 털어 넣기 딱 맞는 크기라는 것이제. 우리 할배는 사발에다가 마셨거든. 그러다 일찍 가셨고. 그렇게 그렇게 오다가 딱 요 크기가 된 것이여. 더도 덜도 말고 요만큼 씩만 묵어라 이말이여. 그 뜻을 존중 해야제!” 소주를 나눠 마시려던 나한테 동네 형님이 늘어놓은 말씀이다. 그래 지당하신 말씀이다.

문제는 술이 아니라 내 몸이다. 어쩌다 새참으로 몇 잔 받아먹으면 한 두 시간 후 대책 없이 잠이 쏟아진다. 풀 뽑다가 고랑에 앉은 채로 목 꺾고 졸기도 했다. 기운 빠지고 정신 빠지고 일을 할 수가 없다. 행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지만 누군가 지나가다 뒷모습을 봤다면 머리 없는 몸뚱아리에 놀랐을 성 싶다. 동네 어르신들은 “술 심으로 농삿일 허지 맨 정신에 워찌 헌당가” 하시지만 올해는 그냥 맨 심으로 해 볼란다.

내려와서 늘어난 것 중에 하나가 짜증이다. 나는 잘 못 느꼈는데 아내가 종종 그런다. “좋다고 내려와서는 왜 짜증을 부려.” 이후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내가 언제!” “봐봐. 지금 이게 짜증내는 거 아니야?” ““힘드니까 그렇지!” “힘들면 일을 줄여야지.” “농사일이 내가 줄이고 싶다고 줄어드나!” “그러면 농사를 짓지 말지?” “말이야 방구야. 그게 농사짓는 사람한테 할 소리야!” “이거 봐. 또 화내는 거 봐.” “내가 그냥 화냈어? 화를 나게 하니까 그러지!” “화 내는 게 당연하다고? 내가 뭐라고 그랬는데?” 이마에 블랙박스 카메라라도 붙이고 싸우든지 해야지, 대화 진도는 쳇바퀴를 돌면서 제자리인데 목소리만 커진다.

엊그제 TV에 나온 한 교수가 ‘쉬는 법’에 대해 얘기하면서 “짜증은 성격이 아닙니다. 맡은 일이 버거울 때 당연히 생기는 심리적 현상이에요”하는데 ‘그렇구나’ 싶었다. 일이 나한테 넘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저곳 보내는 꾸러미 종류가 많다 보니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게 당연했다. 일 머리도 없는 주제에 잔뼈 굵은 어르신들 흉내라도 내려니 가랑이에 금이 갔던 거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잘라낼 방법은 없다. 종류를 확 줄일 수도 없다. 조정이 필요하다.

‘농사 종류를 바꿔야 하나’ 생각해보니 귀농학교 다닐 적 누군가 “농사 종목은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 축산과 주조(酒造)를 해야 맞다. 나한테는 고기와 술이 딱 맞는 거다. 하지만 이미 포기했다. 병아리 10마리 키우다가 폭염에 몇 마리를 묻고 나서 허파 달린 동물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다. 어쨌든 지난 3년을 수습농부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 왔다면 이제 조금은 곁을 살피면서 장거리 레이스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가 끊고 줄여야 할 시기였다면 늘리고 새로 시작해야 할 것도 있다. 여유를 더 찾아야 하고, 시간도 더 냈으면 좋겠고, 적지만 기부라도 시작했으면 한다. 지금까지가 뭐든 빨아들이고 받아들여 쟁여놓는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좀 펼쳐놓고 정리하고 색을 입히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며칠 전 뭐 도움되는 책이 있을까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브라운칼라(brown collar)’ 얘기가 나왔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화이트칼라 계층이 블루칼라처럼 육체노동을 하면서 그 동안 쌓았던 지식을 응용해 새로운 직업을 창조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조금 더 검색을 하다 보니 어떤 학자가 육체노동을 독려하며 이렇게 얘기했단다. “그대들은 일할 때 시간의 속삭임을 음악으로 울려 퍼지게 하는 피디가 될 것이다.” 뭔 얘긴지 참. 이 말을 인용한 사람은 또 이랬다. “젊은이들은 건강한 육체를 만들기 위해 헬스클럽에 갈 것이 아니라 육체노동을 하라.”

‘하얀색이랑 파란색을 합치는데 왜 갈색이?’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혹시 나 같은 사람을 말하는건가 했더니 역시 아니었다.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육체노동도 다른가 보다. 헬스클럽을 대신하는 노동이라면 나도 멋진 복근이 생길만한데 전혀 아니다. ‘페레로..’ 뭔가 하는 동그란 초콜릿을 포함한다면 내 배 또한 초콜릿 복근이라고 우겨볼 테지만. 색깔 같다고 다 같나. 집어치우자. 난 그냥 노동하는 사람으로 할란다.

새해가 되니 동네 어귀에서 꽹과리 소리가 한창이다. 구례 봉성산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농악대의 흥겨운 가락이 여기까지 미치나 보다.

아침 먹자고 소집하는데 간전댁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콩 워쩌케 했소. 안직 안 개렸으면 가져와 봐요. 내가 슬슬 하면 되니께.” 우리집에 CCTV라도 달아 놓으셨나 보다.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근거로 말씀하신다. 전날 농업기술센터에서 기계로 콩을 선별 해왔지만 다시 손으로 골라내야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데 그 마지막 단계를 해주시겠다는 선심성 명령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간단하게 차린 음식과 반주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남부지방은 김장을 마치고 동지가 지나면 농한기로 접어들지만 입춘(2월4일경) 무렵 다시 농사일을 시작한다. 기후가 따뜻한 만큼 쉬는 기간도 적은 편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간단하게 차린 음식과 반주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남부지방은 김장을 마치고 동지가 지나면 농한기로 접어들지만 입춘(2월4일경) 무렵 다시 농사일을 시작한다. 기후가 따뜻한 만큼 쉬는 기간도 적은 편이다.

할머니 댁 앞에 차를 세우고 콩을 내리는데 할머니가 웃으시며 “아이구, 애쓰셨소. 농새 짓다 보니 이삐던 차가 지게가 되야 부렀네.” 하신다. 차 안에 흙이며 지푸라기가 펼쳐진걸 치워주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구석에 떨어져 있던 담뱃갑도 긁어내 뒷자리에 놓으셨다. “트럭 겸용으로 쓰는 건데요 뭐. 한번 털어내고 비오면 깨끗해져요.” 하니 “뭐할라고 고생하는지” 하신다. 우리 할머니 참...

집에 와서 있으니 몇 시간째 입이 심심하다. 문득 할머니가 찾아 주신 담배가 생각났다. ‘저걸 피워? 말어? 버려?’ 생각하는데 발은 이미 차로 향하고 있다. 걸으며 나름대로의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래, 오늘 해는 어제와 다른 태양이었을 뿐. 어차피 나는 한민족이니 진정한 새해는 오늘이 아니라 설날부터 시작되는 거야.’ 한 모금 깊게 빨고 내뱉으니 몽롱하면서도 호흡이 안정되고 몸에 기운도 빠진다. 그런데 마음은 좀 찝찝하다. ‘갑오년 지나년 을미가 아니라 망통이 되는 거 아녀?’ 이 와중에 화투장 족보 타령이라니…심히 걱정된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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