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6.5˚] 좌석승급의 불편한 현실

입력
2015.01.01 15:40
0 0

‘49B’. 공항 항공사 카운터에서 받아 든 비행기 보딩패스에 이와 같은 좌석번호(보잉 747-400 기준)가 찍혀 있다면, 기종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신은 영락없이 불편한 여행자의 운명이다. ‘49’라는 숫자는 대체로 이코노미 클래스 중에서도 엔진 소음이 가장 큰 자리를 의미하며, ‘B’는 양 옆의 팔걸이를 놓고 옆자리 승객과 무언의 쟁탈전을 치러야 하는 중간 좌석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하지 않아 인터넷 사전좌석예약으로 좋은 자리를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할 뿐, 일단 군소리 없이 받아 쥐어야 하는 좌석번호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49B’는 도착지에서 짐을 찾기 전까지 유지되는 당신의 ‘등급’이기도 하다. 비행기 좌석만큼 지갑의 두께가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공간이 또 있으랴. 팔걸이를 나눠 써야 하는 옆자리 승객과 같은 신세임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버틸 수밖에.

하지만 아주 가끔 ‘49B'가 비즈니스 클래스의 ‘7A'로 바뀌는 상황이 벌어진다. 모든 여행자의 꿈, 무료 좌석승급이다. 200만원이 넘는 미주 왕복티켓을 손에 쥐고도 마음 편하게 등받이 한 번 젖힐 수 없는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이 돌연 스테이크의 굽는 정도를 고를 수 있는 ‘7A’에 앉게 되는 행운. 아쉽게도 이런 꿈 같은 일은 아주 가끔 벌어질 뿐이다. 좌석승급의 ‘사다리’를 돈을 내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여행업계 사람들 사이에선 흔하게 오가지만, 실상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그래도 순전히 행운에 의지해 좌석승급을 이루고 싶다면 우선 ‘7A’손님에 걸맞은 복장과 표정으로 탑승구 주변을 서성거려 보라고 전문가들은 추천한다. 항공사들은 예약을 깨는 이른바 ‘노 쇼(No Show)’승객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반석의 경우 만석을 조금 상회하는 예약(오버부킹)을 하곤 한다. 자칫 예측이 잘못되어 예약자 모두가 탑승할 경우, 항공사는 어쩔 수 없이 빈 자리가 남은 ‘7A’의 영역인 비즈니스 클래스를 ‘49B’들에게 열어주게 된다. 누가 봐도 공평하지 않은 좌석승급 사실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7A’의 외모를 한 ‘49B’들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사후 보고가 필수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지만 과거엔 체크인 카운터에서 지인을 만나는 게 좌석승급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러한 묘책이라는 것들로 실제 제값을 지불하지 않은 승객이 비즈니스 클래스에 들어서는 일은 만의 하나다. 요즘은 항공사들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49B’들의 무료 좌석승급을 해주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명품을 두르고 성공한 기업인을 닮은 미소를 띤다 한들, 비즈니스 클래스를 요새처럼 둘러싼 커튼을 빈 손으로 열고 들어가 땅콩을 접시에 담아달라고 호기롭게 말할 기회를 기대하지 말란 얘기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이 터지면서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대한항공으로부터 이러한 무료 좌석승급을 관행처럼 받아왔다는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다. 성공한 기업인 흉내를 내며 오버부킹의 빈 틈을 노려야 겨우 좌석승급의 작은 가능성을 바랄 수 있는 그저 그런 ‘49B’와 달리, 이들은 제 값을 낸 ‘7A’들 속을 제 집마냥 오갔다. 팔걸이를 놓고 다투던 옆 자리 승객이 단지 ‘갑’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좌석승급을 이뤄낸다면, 긴 여행은 더욱 고달프지 않을까.

부적절한 ‘좌석승급’은 항공기 내부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거나 혹은 조장된다. 어떤 이들은 배임 등의 죄를 짓고 수감중인 경제인들이 가석방이라는 이름의 ‘좌석승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안락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경제성장은 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몇몇 언론들도 이들에게 가석방의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황당한 일’이라고 힘을 보탠다. 재계 총수가 아닌 ‘49B’들에겐 형기를 거의 채우지 않고선 그저 꿈만 같은 가석방을 말이다. ‘좌석승급’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선 치러지는 대가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공정한 잣대와 기준이 우선한다. 비즈니스 클래스로 향하는 커튼이 갑과 을을 따져가며 열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