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인데도 대학가에 분노의 대자보가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경희대에는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등장했다. ‘최경환 학생, 답안지 받아가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시험지 형식을 빌렸다. ‘오늘날 한국 경제위기의 해결 방법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부동산 경기 활성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을 답안으로 채웠다. 채점 결과는 낙제점인 F였다.
▦ 지난달 연세대와 고려대 등에 ‘최씨 아저씨에게 보내는 협박편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는 “최경환 아저씨 계급장 떼고 그냥 포장마차에서 만났다고 상상해봅시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취업난 등 젊은 세대들의 고통과 우리 사회의 불안한 미래를 지적했다. “미래를 갉아먹고 지금 당장 얼마나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정규직 갉아먹고 ‘노동자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청년세대에게 짐을 미뤄두고 장년세대는 얼마나 마음 편할 수 있습니까?” 대자보는 이렇게 맺는다. “다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
▦ 요즘 20대는 ‘3포 세대’(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넘어 ‘5포 세대’(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세대)로 전락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청년들의 불안은 정부와 정치권,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20대여 짱돌을 들라”고 외쳤지만 암담한 현실과 기성세대에게 주눅든 청년세대에게 대자보는 가장 과격한 의사 표현이자 운동의 도구다.
▦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쓰 노리토시의 책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불황을 뜻하는‘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젊은이들은 희망을 버렸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20대의 70%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 모순을 파고든 저자는 미래가 더 나아지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모든 가능성이 막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라는 설명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가. 일본처럼 자기 최면을 걸지 않고 분노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미래가 없으니 그들처럼 작은 현실에 만족하라고 해야 할까. 2015년에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꿈을 줄 수 있을까.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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