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11.4% 내린 저유가 여파 12월 소비자물가 0.8% 상승 그쳐
14개월 만에 0%대, 15년 새 최저 경기부진으로 수요 뒷받침 안 돼
"디플레이션 적극적 방어 필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로 떨어졌다. 심지어 15년래 최저치다. 경기 둔화 속에 물가 하락세가 점점 더 심화되면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더욱 강하게 우리 경제를 뒤덮는 모습이다.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8% 상승하는데 그쳤다. 1999년 9월(0.8%) 이후 15년 3개월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고, 0%대로 하락한 것 역시 작년 10월(0.9%) 이후 14개월 만에 처음이다. 소비자물가는 2012년11월 1%대로 내려앉은 이후 줄곧 2%벽을 넘지 못하고 횡보를 거듭해왔다. 올 들어 5, 6월(1.7%) 정점을 찍으며 상승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이후 다시 가파른 내리막을 걷다가 결국 1%선마저 붕괴된 것이다.
물가하락을 주도한 건 역시 유가였다. 최근 국제유가는 배럴당 50달러대에 거래되며 2009년 이후 5년여만에 최저치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실제 12월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무려 11.4%가 하락했고, 전달과 비교해서도 3.9%나 떨어졌다. 석유를 원료로 만드는 각종 공업제품의 가격(-0.6%) 역시 내려갔는데, 휘발유(-10.8%), 경유(-12.6%), 등유(-12.1%) 등의 내림세가 특히 컸다.
한해 동안 물가 하락의 한 축을 담당해온 농수축산물도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0% 오르는데 그쳤다. 축산물 가격이 사육두수 감소 및 연말 소비증가 등의 요인으로 오름세(8%)를 보였지만, 농산물(-4.1%)이 상승폭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 하락만이 지금 물가 하락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전달에 이어 1.6%에 그쳤다. 작년 8월(1.5%)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국제유가 등의 외부 변수를 배제하고라도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물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저물가 흐름이 12월까지 이어지면서 2014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1.3%에 그쳤다. 2011년 4.0%에서 2012년 2.2%, 그리고 2013년 1.3%로 떨어진 이후 2014년에도 같은 수준에 머문 것이다. 연간 물가 상승률로 봐도 199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2.5~3.5%)의 하단에도 절반 수준밖에 못 미친다.
하지만 새해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가 하락세가 간단치 않은 분위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2015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업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감산하지 않고 중국의 수요 역시 강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근거로 들었다. 더구나 새해 국내 경기 전망 역시 밝지 않은데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소비를 제약하면서 물가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물론 1월1일부터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되면서 물가가 다소 오르긴 하겠지만, 단지 지표 상의 변화 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물론 디플레이션 우려는 아직까지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안심할 수는 없는 처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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