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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세모(歲暮)의 소망

입력
2014.12.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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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전 2세기 때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3년 동안 정원에도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는 인물이다. 유학자들에게 학문이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방도를 연구하는 것이었는데, 한 무제(武帝)가 즉위해서 정치의 잘잘못을 말해달라고 하자 동중서가 글을 올려 유가(儒家)의 다스리는 법을 설명했다. 한서(漢書) ‘동중서(董仲舒) 열전’에는 이를 보고 감동한 한 무제가 다시 글을 내려 조언을 구하자 동중서는 거듭 글을 올려 다스림의 도를 설명하는 것이 나온다. 동중서는 “춘추(春秋ㆍ공자가 지은 역사서)에서 그 깊은 원인을 탐색해보면 도리어 귀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라면서 군주의 솔선수범을 먼저 꼽았다. 그러면서 벼슬아치들의 처신도 설명했다. “옛날 녹봉을 받는 자는 농사를 지어서 먹지 않게 하고, 상공업(商工業)을 하지 않게 하는데, 이는 큰 것을 받은 자는 작은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역시 하늘의 뜻과 같은 것입니다. 무릇 큰 것을 받고 또 작은 것도 취한다면 하늘도 만족하지 못할 텐데 하물며 인간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한서 ‘동중서 열전’) 동중서는 또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죄를 짓는 자가 많은 것은 빈부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자들은 사치함이 넘쳐흐르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극도로 궁색하니 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합니다. 극도로 궁색해서 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하는데도 위에서 구제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사는 것이 즐겁지 않게 됩니다. 사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오히려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어찌 죄를 피하겠습니까?”(한서 ‘동중서 열전’)

동중서가 녹봉을 받는 집안은 녹봉으로만 생활해야지 백성들과 사업을 다퉈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벼슬아치가 사익(私益) 추구에서 벗어나 천하의 이익을 고르게 나누어 백성들의 집안도 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중서는 노(魯)나라 무공(繆公) 때 벼슬아치였던 공의자(公儀子)의 사례를 들었다. 공의자가 노나라에서 벼슬살이할 때 부인이 비단을 짜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부인을 내쫓았으며, 관사에서 아욱과 채소를 기르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아욱과 채소를 뽑으면서, “나는 이미 녹봉을 먹는데 또 농부와 아낙들의 이익을 빼앗겠는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동중서는 옛날 현인과 군자가 벼슬에 있으면 모두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그의 행동을 높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백성들도 그 청렴함에 교화되어 더러운 것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과 일사유사(逸士遺事) 등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영조 때 호조의 서리였던 김수팽(金壽彭)이 선혜청의 서리로 있는 아우 집에 갔더니 제수(弟嫂)가 염색을 하고 있었다. 김수팽은 동생을 매질하며, “우리 형제가 다 후한 녹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한다면 저 빈자(貧者)들은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냐?”라고 꾸짖고 염색 항아리를 모두 엎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향견문록은 유재건(劉在建ㆍ1793~1880)이 편찬한 책인데, 이향(里鄕)이란 양반 아닌 서민들이 사는 마을을 뜻한다. 김수팽도 양반이 아닌 중인 출신 서리였다. 조선 후기 양반들이 각종 탐학을 일삼는 상황에서 중인 서리 몇 명이 군자다운 처신을 한다고 세상이 바뀔 리 없었다. 더구나 조선은 갑(甲)들의 을(乙) 차별이 제도화한 나라였다. 일사유사는 한말의 언론인 장지연(張志淵ㆍ1864~1921)이 편찬했는데, 그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고려말의 폐단을 이어받아 사람을 등용하는 길이 극히 좁았으니 세족지가(世族之家ㆍ세력 있는 집안)의 자손은 비록 용렬해도 대대로 관직을 세습하고, 한준지사(寒畯之士ㆍ가난한 선비)는 영재(英材) 준걸(儁傑)이라도 벼슬할 수 없었다. 또한 신분적으로 중인ㆍ서얼ㆍ상민ㆍ천인을 구별하여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지역적으로 서북(西北ㆍ전라도 함경도) 양도(兩道)를 구분하여 앞길을 막았다. 오호라! 원기(寃氣ㆍ원망하는 기운)가 화기(和氣ㆍ화합하는 기운)를 범하고, 중한(衆恨ㆍ많은 사람들의 원망)이 하늘에 사무쳐 400여년을 내려왔으니 나라가 드디어 망하고 말았다.”(장지연, 일사유사 서문)

현재 한국 사회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중한(衆恨)은 점점 하늘까지 닿아간다. 땅콩회항 사건은 사치함이 넘쳐흐르는 부자들의 교만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사례이고, 재벌회장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석방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집권실세들이 펼치는 것은 백성들의 가난을 조롱하는 것이다. 여당이 이런 판국에 제1야당의 비대위원장은 땅콩회항사로부터 처남에게 8억여원을 받게 하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가고 있으니 백성들이 마음 둘 곳이 없어 하늘만 쳐다본다. 전봉준(全琫準)이 나타나지 않았던 갑오년을 보내면서 을미년, 새해는 다르기를 기대해본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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