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언론사들은 그 해에 있었던 중요한 10대 뉴스를 선정한다. 언론사별 기준이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사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병영사고’ 등이다. 위 사건들은 발생 원인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알고 있었고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청해진해운의 한 직원이 여객선의 안전사고 위험성에 대한 민원을 제기한 사실이 있었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의 경우 지난 대선 선거 당시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군대 내 가혹행위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사안이었다. 예견된 사고를 막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실상을 아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등은 기본적으로 공적 영역의 문제이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공익제보의 범주에 포함된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씩 도약하는 데에는 공익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문옥 감사관은 대기업의 감사원에 대한 로비를 폭로해 감사원의 독립성을 확보했고,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불법 비자금을 폭로해 재벌의 부적절한 행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장진수 주무관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등을 폭로해 권력에 대한 감시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공익제보자들의 폭로 이후 인생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 못하다. 이문옥 감사관은 폭로 직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됐고 김용철 변호사는 수년 동안 각종 고소ㆍ고발 및 재판에 시달렸다. 장진수 주무관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낸 공익제보자들이 소속 조직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혼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현행법상 공익적 목적의 제보ㆍ신고를 장려하거나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법률은 공익 침해 행위를 신고한 사람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공직자 및 공공기관과 관련된 부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된 ‘부패방지법’ 등이다. 그런데 위 두 법률은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못해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는 국회의원, 언론, 시민단체에 대한 제보가 위 법이 보호하는 공익제보의 범주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제보자들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표방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제보자들은 국가에 신고할 경우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언론 등에 대한 제보가 공익제보의 범주 안에 포함돼 법에 따라 제보자의 신원 등이 보호된다면 공익제보는 당연히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제보자에 대한 과감한 경제적 지원도 공익제보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보자들이 공익제보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실제로 상당수 공익제보자들은 제보로 인한 해직 등으로 경제적 궁핍함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스위스 금융회사인 UBS의 탈세를 폭로한 공익제보자에게 1억400만달러(약 1170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됐고 1,000만달러(약 110억원) 이상의 보상금 지급도 20여건이 넘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지급된 보상금 최고액은 4,300만원에 불과하다. 미국의 공익제보가 우리에 비해 활성화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원 또한 공익제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제보자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공익신고 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나 부패방지법상 ‘부패행위’에 해당하는 사안을 제보해야 하고,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안은 법에 따라 보호받지 못한다. 물론 위 문제는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나, 법원은 개정 이전이라도 판결로서 공익제보자의 신분을 어느 정도 보호해 줄 수 있다.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 반드시 징후가 존재한다는 법칙으로 ‘1:29:300 법칙’으로도 불린다. 즉 부정ㆍ부패로 인한 대형 사건이 터지기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300건의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공익제보는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언젠가는 발생할 대형 사건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 및 과감한 경제적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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