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와 60년대의 한국의 정치사회를 분석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 한국:소용돌이의 정치는 1948년부터 1950년, 1958년부터 1963년까지의 한국이 대상이다. 건국과 한국전쟁, 4월 혁명과 자유당 정권 붕괴, 장면 정권의 성립과 쿠데타로 인한 민주주의의 좌절, 그리고 군사정부의 수립 등 한국현대사의 격동의 시기다. 이를 헨더슨은 소용돌이로 보았다. 숨막히게 달려 온 지난 반세기는 소용돌이와 혼돈, 좌절과 성취가 교차한 시기였다. 그 혼돈과 소용돌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의 적폐의 응집이 세월호 참사로 나타나고 권력의 불통이 상징적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표출됐다.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이 통진당 해산이라는 인위적 정당해체로 드러났다. 한 사회가 동일한 기간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사회정치적 소용돌이였다. 모든 사건과 현상은 누적되고 응축됐던 순간들이 한 순간에 집적돼 나타난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와 구조적 부조리가 문화적 요인과 역사적 배경이라는 상황변수와 맞물리면서 치부가 노출된 사건들이다. 이를 마주하는 방식에서 관용과 배려는 배척됐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대척점으로 갈라서 있는 고질적이고 진부한 진영논리가 어김없이 합의와 소통의 발목을 잡았다.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환경은 이런 여건을 숙성시키는데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구조적 진영논리는 남북분단이라는 태생적 변수에서 비롯된 면을 부인할 수 없다. 헨더슨이 말하는 ‘소용돌이’는 그래서 지금도 적용 가능한 현상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상황적 외생변수만 탓하기에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정당들이 진영 정치의 완화와 정치 복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정당은 국민의 갈등을 표출하고 이해를 반영함으로써 공동체가 암묵적 또는 명시적으로 합의한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그것이 정당의 존재 이유요, 기능이다. 이에 대한 평가와 성적을 토대로 정권을 차지하기도 하고, 빼앗기기도 한다. 이런 정치과정의 선순환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성숙시킨다. 그래서 정치는 곧잘 경제에 비유된다. 경제에서의 가격기구가 왜곡되면 시장은 기능을 상실하고 독과점이 발생한다. 피해는 사회구성원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정치에서의 가격기구는 선거라는 정치과정이다. 정치과정이 왜곡되면 사회의 의사결정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정치의 독과점구조는 진영논리에 의해 재생산된다.
그러나 정권의 한 축인 집권당은 정당으로서의 언어를 잊은 듯 하다. 집권세력을 지지하는 견고한 계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진영 논리에 편승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수평적 당청관계는 언감생심이다. 모든 권력의 정점은 청와대다. 그 청와대의 심기를 살피기 급급하고, 사회적 현안과 정치적 갈등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다. 정치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형국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의 소통은 일방적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때,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재난이 닥쳤을 때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의 방향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가이드 라인’의 정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정이 그랬고, ‘정윤회 문건’을‘찌라시’로 규정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충실한 검찰도 마찬가지다. 통진당 해산 선고 이후의 발빠른 통진당 당원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수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니 정치 부재와 정치 실종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야당의 무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야당 또한 스스로 진영의 굴레를 과감히 끊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여당의 반 토막인 정치현실을 야당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야당도 여당과 ‘공생’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과정과 정치적 사건에 대응하는 관점의 저변에 편가르기가 똬리 튼다.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심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왜곡이 한국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 요인이다. 물론 구조적 요인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요인도 정당이 제 기능을 인지한다면 완화 또는 종식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정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