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사랑의 감동 보여준 ‘언브로큰’
성탄절에 증오와 분노 퍼뜨린 ‘인터뷰’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튼튼한 배 띄워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용서와 사랑, 화합을 그린 영화가 제격이다. 미국에서 이번 크리스마스에 개봉된 ‘언브로큰(UNBROKEN)’의 흥행이 이를 잘 말해준다. 개봉 당일 1,559만 달러(약 171억원)를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역대 크리스마스 개봉영화 중 ‘셜록홈즈’(2009), ‘레미제라블’(2012)에 이어 개봉 흥행 성적 3위라고 한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의 감독 데뷔 후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온갖 고생을 하다 생환한 미국 육상스타의 실화를 그렸다. 잔혹한 고문을 당했던 주인공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군 간수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알코올중독 등으로 거의 폐인이 되었다가 신앙에 눈뜨고 옛 간수들을 용서한다는 줄거리다. 일본 우익들이 일본군의 잔학상을 부각시켰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용서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에 비하면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이번 크리마스 개봉작 ‘인터뷰’는 영 딴판이다. 사이버 공격과 테러 위협, 개봉 취소 등의 소동 끝에 일부 독립극장과 온라인을 통해 개봉된 이 영화는 증오를 부추기고 인종차별적인 욕설로 가득하다. 증오와 분노를 세상에 퍼뜨리고 증폭시키는 영화는 예수님이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러 이 세상에 오신 성탄시즌에 어울리지 않는다. 소니 픽처스가 이래저래 입은 막대한 피해는 그 대가일 것이다.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아직 논란이 적지 않지만 북한이 ‘평화를 수호하는 사람들’을 앞세워 ‘인터뷰’의 개봉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큰 낭패다. 당초 예정됐던 대형 극장체인 개봉은 취소됐지만 300개가 넘는 독립극장들이 크리스마스 날 개봉해 만원사례를 이뤘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75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킹소동으로 전세계의 주목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운 결과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이던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도 한층 더 나빠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소니 픽처스 해킹 공격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며 대미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북한을 해킹의 배후로 지목하며 ‘비례적 대응’을 천명한 오바마 대통령을 “열대 수림 속에 서식하는 원숭이”에 빗댔다. 북한은 5월에도 오바마를 겨냥해 ‘잡종’ ‘원숭이’등의 인종차별적 용어를 동원했다. 그가 아프리카계 흑인임을 노골적으로 비꼬는 표현들이다. 영화 ‘인터뷰’ 속의 인종차별적 표현이나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도찐 개찐’이다.
북한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은 1주일 넘게 접속 불안정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비례적 대응’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미간 사이버 전쟁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쿠바가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한 분위기가 북미 관계 변화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오바마 정부는 영화 ‘인터뷰’제작에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인터뷰’의 후유증은 앞으로 상당기간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제약하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남북간에도 그런 일이 흔하다. 뭐 좀 해 보려고 하면 훼방꾼들이 나타난다. 인천아시안게임과 북측 권력실세 3인의 방남으로 무르익었던 대화 분위기가 몇몇 탈북자 단체의 대북삐라 살포로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으로 통하는 바다에는 늘 크고 작은 풍랑이 인다. 북한과 무슨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 풍랑들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는 튼튼한 배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정부측 부위원장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9일 북한을 향해 또 한 척의 배를 띄웠다. 내년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아 남북 공동으로 뭐 좀 해보자는 제안을 실었다. 그리 튼튼해 보이 않아 풍랑을 이겨낼지 모르겠고, 북측이 흡수통일전초기지로 여기는 통일준비위원회 깃발을 달았다고 퇴짜를 놓을 수도 있다. 평화의 동물 양의 해 을미년 새해에는 남북이 어떤 풍랑도 헤쳐나갈 수 있는 튼튼한 화해와 교류협력의 배를 띄웠으면 좋겠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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