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통일, 통준위 명의로 北에 제의… 정부 유화발언→김정은 친서
靑, 분위기 있었다 판단 주도권 잡기 "5·24조치 등 모든 의제 논의 가능"
정부가 내년 1월 중 남북 당국간 회담을 갖자고 29일 북측에 전격 제의했다. 새해를 사흘 앞두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남북대화를 제안한 것은 광복 및 분단 70주년인 2015년에는 주도권을 쥐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명의로 회담을 제안해 북측의 반응이 주목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통일준비위원회는 내년 1월 중 남북간 상호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가질 것을 북측에 공식 제안한다”며 “북측에 전화통지문을 보냈으며 북측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준위는 통일시대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 청사진을 만들겠다며 2014년 구성한 반관반민 조직이다.
북측이 남북대화에 동의하면 정부는 통준위 정부 측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류 장관에게 회담 수석대표를 맡길 계획이다. 회담 성사시 류 장관 외에 정종욱 통준위 민간 부위원장도 회담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정부는 덧붙였다. 회담 장소로는 서울, 평양 또는 기타 남북이 상호 합의하는 장소를 제안했다. 통일부가 이날 오전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 앞으로 보낸 전통문은 북한이 수령했지만 곧바로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국정과제 점검회의 석상에서 “도발에는 강력하게 대처를 하되 대화와 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일관된 원칙으로 비정상적 남북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고 있다”며 “새해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의 대화 제의 의도는
1월1일 북한의 신년사 발표를 앞둔 연말에 정부가 전격적으로 남북대화를 제안한 것은 2015년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 역점 사업인 통준위를 회담 주체로 내세우면서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회담 장소로 평양까지 열어놓은 것도 북측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남북대화가 성사되면 모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는 입장이다. 류 장관은 우선 “내년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가 적어도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나가기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회담 개최시 의제로 통준위가 지난 1년 동안 준비해온 활동 내용을 설명하고 2015년 계획을 북측에 설명,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복 70주년 기념 남북축구대회, 평화문화예술제, 세계평화회의,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남북 DMZ 공동조사, 북한 내 보건 영양 생활인프라 개선, 산림 녹화, 수자원 공동 이용 협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류 장관은 또 “이 만남을 통해 설 전에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 설(2월 19일) 전후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가 핵심 의제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북한이 관심을 갖는 5ㆍ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문제나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등도 회담 의제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류 장관은 “남북 간에 서로 관심 있는 사안들을 다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과연 호응할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남북관계는 순탄한 적이 없었다. 지난 10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의 최룡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 실세 3인방이 깜짝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남북관계는 훈풍이 예상됐다. 하지만 반북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 변수로 2차 고위급 접촉이 무산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냉랭해졌다.
이후 남북의 관계개선 노력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상당히 완화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 5일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부문에서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유화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3주기를 맞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4일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등에게 통일 노력을 강조하는 친서를 보내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김양건 비서는 친서 전달 자리에서 “남과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란다”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진정성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강산관광, 5ㆍ24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 문제에서 소로(小路)를 대통로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정부의 대화 제의는 남측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북측이 맞장구를 치고 나오는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까지 북측에서 답변이 없는 2차 고위급 접촉과 함께 ‘투 트랙’으로 진행할 의사도 내비쳤다. 류 장관은 “북측이 2차 고위급접촉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응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이) 나온다면 2차 고위급접촉은 개최가 된다”면서 “이번 회담은 당국 차원의 논의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회담이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준위 제의가 걸림돌
다만 북한이 당장 대화에 호응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정부가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남북대화 주체로 청와대나 통일부가 아닌 통준위를 내세운 데 대해 북측이 불편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라고 비난해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아닌 반관반민 성격 통준위 대표가 북한 당국의 대화상대가 된다는 걸 꺼려할 수도 있다. 또 통준위는 통일에 대한 기본 정책 방향과 여론 수렴, 대통령 자문을 위한 기구이지 정책 집행기구가 아니어서 북한이 비판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도 북한이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대대적으로 밝히는 1월 1일 신년사 발표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당장 반응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도 내년에 주민생활을 한 단계 격상시켜야 하고 대외관계 안정화도 필요한 만큼 남북대화 필요성에는 공감할 것”이라면서도 “대화 주체로 통준위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고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수정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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