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방암센터 수술에서
선진국 수준 80% 보존율 기록
모유 수유 땐 유방암 20% 감소
조기 발견하면 걱정할 필요 없어
여성의 상징인 유방에 암세포가 생겨났을 때, 예전에는 유방 전체를 잘라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른바 ‘유방 전절제술’의 시행이다. 암세포를 찾고 이를 제거해 내는 진단ㆍ치료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데다, 유방암의 특성상 암세포가 눈에 뵈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에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일단 재발의 소지를 차단하고 보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고 봤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암 진단과 치료 기술이 좋아져 유방암 환자의 5년생존율이 90%를 넘어선 데다, 삶의 질의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의사나 환자 모두 전절제 보다는 가급적 유방을 보존하자는 쪽이다.
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센터장 양정현ㆍ의료원장)는 지난해 유방보존술에서 ‘기록’을 세웠다. 이 센터는 지난해 모두 402건의 유방암 수술을 했는데, 유방보존 비율이 80%를 넘어선(80.3%ㆍ325건)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국내 평균치(약 75%)를 훨씬 웃도는 것이자 미국, 유럽과 대등한 것이다.
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를 이끌고 있는 양정현(65) 의료원장을 최근 만났다. 양 원장은 보존술 비율이 높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요즘 환자들은 삶의 질을 많이 생각한다. 좀 더 보존 쪽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방침을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2012년 9월 유방암센터 개설 뒤 수술이 2배 넘게 증가했다”며 “우리 병원은 의료진과 환자 간 인간적 교류가 활성돼 있고, 다학제진료도 다른 병원보다 더 수월하다”고 했다.
2005년 8월 병원을 신축 개원한 건국대병원은 그동안 ‘2015년까지 국내 최고 병원으로 도약’을 목표로 의료진과 의료장비, 진료시설의 확충을 지속해왔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각종 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빈도가 높고 증가세가 빠른 유방암 부인암 대장암 폐암 갑상선암은 전문암센터에서, 위암 등 나머지는 암클리닉에서 각각 진료하고 있다. 유방암센터는 국내 유방암 권위자인 양 원장이 중심축으로, 유방내분비외과 성형외과 종양혈액내과 재활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등 8개 진료과의 유방질환 전문의가 대거 포진해 있다. 신속 정확한 진단을 위해 유방감마스캔, PET/CT 등 최신 장비를 갖췄다. 감마스캔은 유방에서 방출되는 감마선을 컴퓨터로 재구성, 3㎜ 크기의 미세종양까지 찾아낸다.
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는 유방암 수술 시 성형외과 전문의와 협진을 통해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방 절제를 통해 비록 암 재발의 공포에서 벗어나더라도 여성성을 상실하게 되면 이후 환자의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종양 개수가 많거나 암 크기가 클 경우 먼저 항암치료를 한 뒤 유방보존술을 위한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방 전체를 절제(유방 전절제술)하는 경우라도 흉터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80.3%라는 높은 유방보존 비율이 센터의 이 같은 치료 방침을 말하고 있다. 양 원장은 절제 수술 시 유방을 가급적 많이 잘라내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는 ‘광범위 절제론’과 유방을 가급적 살림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보존론’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 “20년을 추적 관찰한 데이터가 이미 외국에서 나왔다. 1~2기에서는 보존이나 전절제나 (치료)성적이 같다. 그럴 바에는 삶의 질을 위해 보존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이미 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예전에는 재발률이 높다는 이유로 유두를 몽땅 제거하고 피부도 가급적 넓게 쨌는데, 요즘은 삶의 질을 많이 생각하니까 가급적 보존하는 방향으로 한다”고 흐름을 전했다.
양 원장은 소위 ‘명의’를 손꼽을 때마다 가장 먼저 거명되는 인물이다. 유방암을 전공한 ‘1세대’로, 평생 유방암 치료에 매달려온 양 원장은 이 분야 ‘최초’ 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그는 초기유방암에 대한 ‘침 정위 생검법’(1986년)과 겨드랑이 부위에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는 ‘겨드랑이 임파절 내시경 수술’(1994년)을 국내 처음으로 시행했다. ‘감시림프절 생검’ 도입(1996년)으로 환자들의 통증과 후유증을 크게 줄인 것도 양 원장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방암 수술 시 암세포 전이의 두려움 때문에 겨드랑이 림프절을 모두 잘라냈다. 감시림프절 생검(Sentinel Lymph Node Biopsy)이란 암세포 전이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이른바 감시림프절을 찾아 조직검사를 실시, 여기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굳이 모든 림프절을 절제할 필요가 없다는 신개념 수술 방식이다. 이로써 림프절의 광범위 절제에 따른 림프부종, 어깨 움직임 둔화 등 극심한 후유증의 발생을 막을 수 있게 됐다. 감시림프절 생검은 지금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시행하는 보편적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 원장은 감시림프절 생검 도입 당시에 대해, ‘정립된 수술도 아닌데 나중에 (암이) 재발하면 당신이 책임질거냐’는 비난과 비판이 거셌다고 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선 1인가구가 늘고, 결혼을 꺼리거나 시기를 늦추려는 만혼 등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 기피, 만혼과 이에 따른 고령 출산, 모유 수유의 기피, 여성호르몬 치료, 육식 즐기기 등 세태에 대해 양 원장은 “모두가 유방암 발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람 사는 일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야지, 뭔가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면 병이 생긴다”고 한탄했다. 모유 수유가 유방암 발생을 20%가량 줄인다는 연구 논문이 얼마전 캐나다에서 나왔다. 양 원장은 “결국 유방암은 빨리 발견해 치료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조기발견하면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안 받아도 된다”며 “설사 암이 좀 진행됐더라도 요즘은 치료법이 다양해져 10년생존율이 80%를 넘어섰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올해 교수로서 정년을 맞은 양 원장은 “의사로서는 일하는 데까지 하려한다”고 열정을 비쳤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유방암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임상에서 진전을 이뤄내고 싶다. 유방암의 원인 규명 등 기초연구를 하는 후배를 길러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했다. 양 원장은 인터뷰에서 병원 운영과 수술 실적 등과 관련한 질문들에 대해 시종 과장 없는 솔직한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건국대병원이 각종 의료기관 평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하자 “한편으론 두려움도 있다. 그동안 성장세가 너무 가팔라서 앞으로 이를 어떻게 유지해낼지 걱정이 앞선다”고 몸을 낮췄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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