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프 한국지사의 독일인 팀장 라인하트 스타우다허의 경험담
세계 1위 석유화학회사인 독일계 바스프 한국법인의 홍보팀장인 라인하트 스타우다허의 한국 경험은 놀람의 연속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독일에서도 홍보를 담당했던 그가 겪은 한국의 첫 인상기는 여느 외국인처럼 ‘빨리빨리’였다. 긴 토론을 즐기는 독일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한국이 독일을 롤모델로 삼으며 열심히 독일을 따라 하는 것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한국 인상기를 쓴다면.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의 유연성이 인상적이었다. 빨리빨리 문화인데, 독일인들은 토론을 매우 길게 한다. 결정을 내릴 때 너무 룰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 한국인들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때는 빨리 결정을 내려 바꾼다. 예를 들어 R&D센터를 올해 만들 때도 1년이 채 안 걸렸는데 독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리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에 도로 공사가 있었는데 독일에서는 수개월 걸릴 법도 한 일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퇴근할 때 시작한 일이 월요일 아침에 이미 끝나 있었다. 이처럼 유연성 있게 빨리빨리 한다는 게 놀랍다.”
-독일에 있을 당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독일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독일에서 듣는 한국 얘기는 북한 얘기뿐이었다. 물론 삼성, 현대 등 한국 대기업이나, 아시아의 네마리용으로 성공한 나라인 것은 잘 알고 있다.”
-독일과 한국 기업문화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점이 상하 관계다. 올해 우리 팀에 1명을 뽑았는데 한국의 대기업 직원들까지 지원했다. 그들은 한국 대기업이 돈은 많이 주지만 상하관계가 너무 강하고 보스가 명령만 할뿐 들어주질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아이디어를 발현하고 싶어 외국계 기업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독일 기업은 공사가 분리돼 있어 사생활은 거의 공유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직장동료가 친구이고 사생활에 관심을 갖고, 저녁을 같이 먹고 영화도 함께 본다.”
-한국인들은 독일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다.
“한국에 와서 독일이 너무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것을 알고 놀랐다. 한국언론이 어떻게 독일을 배워야 할지 물어올 때면 어떻게 독일이 그리 좋은 평판을 갖고 있는지 오히려 되묻는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에 대해 너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차를 살 때도 한국 차도 괜찮은데 BMW나 다른 수입차를 더 좋은 것으로 여긴다. 물론 독일 차도 좋지만 가끔 사람들은 오직 외제차만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제차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게 마련이고, 한국차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인들 스스로 낮춰보는 경향이 있어서 독일 브랜드가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정책가들이 특히 독일 정책을 좋아한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성장은 근면하고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혁신적인 독일인에 의해 가능했다. 이는 한국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일은 1980~90년대 경제성장에 너무 자신을 가져, 임금은 높아만 지고, 경쟁력은 떨어지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정치권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회개혁을 시작했다. 정치 쪽의 어젠다 2010, 사회경제 분야의 하르츠 개혁도 그 중 일부다. 노조는 임금 인상률을 낮추고,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며 협력해 살아갈 길을 마련했다.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빚을 많이 지지도 않았고, 공공요금도 합리적이었다. 국가신인도가 높아 빚을 지더라도 이자율이 낮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도 그래서 잘 넘길 수 있었다.”
-독일은 과거사 청산 모델로서 일본과 대비된다.
“독일에 있을 때는 일본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부모님께 내가 잘못하면 사과해야 한다고 배웠다. 최소한 국가가 잘못한 걸 했다면 사과를 하는 게 맞다. 일본도 그렇게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배상할 게 있다면 하고 사과해야 한다. 독일도 희생자들에게 보상을 했고, 기업들까지 과거 저지른 잘못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
-경제회복과 국민화합 위해 과거사는 덮고 가자 하는 여론이 없었는가.
“내가 45살인데 오래 전 할아버지 세대 때의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학교에서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이제는 과거를 덮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대부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를 한다.”
-독일 통일에서 한국이 배울 점이 있다면.
“나의 가족사와도 관련돼 있다. 할머니는 동독, 할아버지는 서독 출신이다. 엄마는 완전히 서독 쪽이고 아내는 동독 지역 출신이다. 어렸을 때는 왜 동독을 여행할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다른 세계였기에 누구도 이게 바뀔 거라고,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통일은 갑자기 찾아왔다. 국경이 열리던 날 그날 저녁 때 무엇을 했는지 모든 독일인은 기억한다. 나도 집에 와서 켠 TV 속에서 동독인들이 국경을 넘어 오고 있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점은 통일은 가능하다는 거다. 심지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더라도 어느 순간 모두가 놀랄 만큼 매우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한국만 독일 배우기를 하는가,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아시아 국가들은 독일에 와서 배우려고 한다. 중국 역시 독일과 관계가 좋고 일본은 독일의 재활용 시스템에 관심이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독일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는데 놀랐고, 독일의 모든 것이 롤모델이라는 데 또 한번 놀랐다. 독일에 있을 때는 한국의 파독 광부나 간호사의 스토리를 몰랐는데 경복궁 근처 역사 박물관에서 이를 큰 섹션으로 소개하고 있어 역시 놀랐다. 다른 나라들이 한국처럼 열심히 독일을 배우려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요즘 독일 사회는 어떠한가.
“너무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이나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전자 기술의 경우 비판적인 여론 탓에 포기했고, 미국이 개발해 세계 에너지 시장 판도를 바꿔 놓은 셰일가스의 경우 이를 뽑아내는 기술을 독일도 개발하다가 환경이 파괴된다고 포기했다. 새로운 것을 하려고 설득하는 게 너무 힘들다.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고 또 너무 오래 걸린다. 사람들의 불만은 쌓이지만 정부는 힘이 없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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