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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이 기록한 인간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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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이 기록한 인간 신해철

입력
2014.12.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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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PC서 발견한 글 묶은 유고집

첫경험ㆍ음악ㆍ종교ㆍ사회문제에

독서광 어린시절ㆍ다한증 고민 등

소소한 개인사까지 고백

신해철은 생전에 써둔 글에서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고 털어놨다.
신해철은 생전에 써둔 글에서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고 털어놨다.

“아아, 재즈 음반을 완성하고 죽고 싶다. 단 한번도 도전하지 않은 생경한 분야, 정말 음악이란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지……”

죽음의 길목에서 신해철(1968~2014)을 돌려 세운 건 음악이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에도 그랬다. 2006년 10월 그가 차를 몰고 강북강변도로를 달리다 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직후 이런 말이 그에게 들렸다. “직진을 하면 넌 죽는다. 다른 사람들은 슬퍼할지 몰라도 너는 영원한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지. 그러나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넌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증오하고 경멸하는 자들과 싸움을 계속하겠지. 그 선택은 항상 인간에게 있다.”

신해철은 왼쪽으로 핸들을 잡아 돌렸고, 살았다. 그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썼다. “음악을 해서 살아남은 지도 모르겠다. 다만 팬들에게 말하고 싶다. 있을 때 잘 하라고. 나는 여러분의 곁에 영원히 있지 못할 것이기에.”

신해철은 어린 시절부터 종종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늘 죽음이 그의 정신 한 켠에 자리 잡아서일까, 죽음에 직면한 경험 때문일까. 고인은 30대에 이미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해뒀다. 부인 윤원희씨가 고인의 사후 컴퓨터에서 발견한 ‘book’ 폴더에는 수십 개 파일의 글뭉치가 있었다.

고인의 글이 유고집 ‘마왕 신해철’(문학동네)로 출간됐다.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그의 데뷔 날인 12월 24일에 맞춰서다.

글은 원고지로 따지면 약 2,000장 분량이었다. 프로필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 첫경험, 음악, 교육, 종교, 역사,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미 책 출간을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둔 듯했다. 파일은 대부분 초고를 여러 번 퇴고한 듯한 수정본이었다. 고인은 파일에 일일이 이름도 붙여뒀다.

편집자 박영신씨는 “연대기 순으로 정리만 했을 뿐 말하는 듯한 고인의 문장을 그대로 살려 실었다”며 “목차도 고인이 붙인 파일의 이름들”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자신의 사진도 따로 모으고 그에 맞는 설명까지 기록해뒀다. 박씨는 “파일에 남은 수정 일자로 추측해보면 고인은 2006년 전후로 원고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책에서 신해철은 방송이나 인터뷰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자신을 털어놓는다. “막상 음악계에 나와보니 살벌한 전쟁터였다.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굽실거리면서 비굴한 웃음을 짓거나 싸가지 없고 거만한 놈으로 찍히거나 둘 중 하나를 반드시 택해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세계였다.”

그가 택한 건 후자였다. 팬들이 지켜보는데도 무대에 올라와 욕을 퍼붓는 엔지니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으면 소속사 동료가수들에게 보복하겠다는 피디, 야외 공연장에서 대기실조차 만들지 않아 가수들을 추위에 떨게 방치한 방송사와 싸웠다.

그러나 신해철은 “나이가 열 살 이상 어린 멤버에게도 명령조의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며 후배들에게 커피 심부름 따위를 시키지 않”는 뮤지션이었다. 이와 달리 세상이 평가하는 자신을 두고 신해철은 ‘사회라는 커다란 연극에서 내게 맡겨진 배역’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독재자 신해철’의 캐릭터를 원한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랄까.”

뮤지션이면서 달변가였던 신해철은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다. 이 사진에 고인은 “1977년 국민학교 3학년 여름. 수영장에 가기에는 너무나도 게을렀고, 자빠져 자기에는 너무나도 책을 좋아했다”이란 설명을 남겼다. 문학동네 제공
뮤지션이면서 달변가였던 신해철은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다. 이 사진에 고인은 “1977년 국민학교 3학년 여름. 수영장에 가기에는 너무나도 게을렀고, 자빠져 자기에는 너무나도 책을 좋아했다”이란 설명을 남겼다. 문학동네 제공

누구나 인정하는 달변가인 신해철은 독서광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초등학교 시절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 가다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읽었다. 도보로 10분 거리의 학교를 오가는 데 세시간이 걸렸다.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어 치워 백과사전까지 집어 들었다. 그런 독서편력으로 그가 추천하는 책 25권의 목록이 이번 유고집에 실려있다. 1번은 ‘모모’(미하엘 엔데)다.

염분으로 모든 악기를 망가뜨릴 정도로 심했던 다한증, 장기 병원치료를 받은 불면증, 양 팔의 상습적 탈골, 그럼에도 군에 입대했다가 얻은 양쪽 무릎 연골막 파열 등 소소한 것들도 책에서 고백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추모의 글에서 고인을 “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인문학 도서를 무겁게 여기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사람, 사회적 약자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다양한 악덕에 온몸으로 분노한 사람,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라고 썼다. 팬클럽 ‘철기군’ 대표인 전선영ㆍ전혜영ㆍ달콤마녀씨는 “타협 속에 길들여지지 말라며 한발 앞서 나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반자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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