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禮記)에 “도를 향해 전진하다가 힘이 다하면 중도에 쓰러질지언정, 몸이 늙어가는 것도 잊고 여생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애면글면 날마다 힘을 쏟아서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鄕道而行 中道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 ?焉日有?? 斃而後已)”라는 공자의 비장한 말이 나온다. 큰 꿈을 꾸던 젊은 시절 강렬한 이 말을 좋아하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감당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옛사람들이 휴(休)라는 글자를 좋아한 것을 이제 나도 좋아하게 된다. 쉬기를 원하지만 마음대로 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나라의 사공도(司空圖)는 자신의 정자를 삼휴정(三休亭)이라 하면서 “재주를 헤아려 보니 쉬는 것이 마땅하고, 분수를 따져 보니 쉬는 것이 마땅하고, 늙어서 귀가 먹었으니 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송나라의 손방(孫昉)은 “거친 차와 맨 밥에도 배부르면 바로 쉬고, 누더기 옷이라도 몸만 따뜻하면 바로 쉬며, 살림살이 그럭저럭 지낼만하면 바로 쉬고, 욕심도 시기도 하지 않고 늙으면 바로 쉰다”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사휴거사(四休居士)라 했다.
이렇게 자신의 별호나 정자 이름에 ‘휴’를 넣어 휴식을 얻고자 했지만 그만큼 휴식은 얻기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초기 강희맹(姜希孟)은 만휴정(萬休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사는 벗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들이 지극한 병이 있는데도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네. … 사람은 쉬지 않는 것이 병인데, 세상은 쉬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니 어찌 그러한 것일까? 사람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아서 백 살까지 사는 사람은 만 명 가운데 한둘도 되지 않네. 설령 있다 해도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와 늙어서 병든 때를 제외하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사오십 년에 불과하네. 또 영욕(榮辱)과 승침(昇沈), 손익(損益)과 애환(哀歡)을 겪느라 나에게 병이 되어 나의 참된 모습을 해친 기간을 제외하면, 느긋하게 즐거워하고 마음껏 쉴 수 있는 날은 수십 일에 불과하다네. 게다가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끝없는 우환을 겪어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우환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쉴 기약이 없는 까닭이라네.”
인생에서 참된 마음으로 휴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될까?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허덕이다가 몸에 병이 났을 때에야 휴식을 취하고 또 그제야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소동파(蘇東坡)는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마음 편한 게 약이지 달리 처방이 있겠는가(因病得閒殊不惡 安心是藥更無方)”라는 명구를 남겼다. 숙종 때의 학자 최창대(崔昌大)는 젊은 시절부터 병이 잦아 그 때문에 자주 휴식을 취해야 했다. 소동파의 이 구절을 매번 읊조리다가 1700년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병이 있어야 한가로울 수 있고 한가로워야 참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참마음의 노래(眞心吟)’에 담았으니,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한가함을 얻고서야 참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참마음은 필경 다른 것이 아니니, 그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因病得閒殊不惡 得閒因得見眞心 眞心畢竟無他物 只向渠家裏面尋)”, “병 때문에 한가할 수 있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네. 한가함을 얻고서야 참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참마음은 생각해서 얻을 겨를이 없으니, 생각을 거치면 바로 그 침해를 받는 법(因病得閑殊不惡 得閑因得見眞心 眞心不暇思量得 ?涉思量被物侵)”이라 했다.
병이 있어 쉬고 쉬다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조급증에 고민만 거듭하다 보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병이 깊어진다. 최창대의 증조부 최명길(崔鳴吉)은 “늘그막에 시계 소리 재촉함을 탄식하지 말라, 어두운 길에는 반드시 촛불을 기다려야 할지니(老去莫嗟鍾漏促 冥行須待燭花燃)”라는 명언을 남겼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밤길을 갈게 아니라 길이 훤해질 때까지 쉬었다가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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