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제 발에 달린 추예요. 땅에 발을 딛고 걷게 해주는…”
이지씨는 소설을 늦게 시작했다. 문학에 빠진 건 고교생 때였지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제 길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나쁜 남자”라는 표현을 썼다. 매력이 지나쳐 해로울 지경이 되면 멀리하는 게 상책이라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범하게(?) 잡지기자를 택했다. 그는 꽤 역사가 있는 패션잡지의 에디터로 오랫동안 일했다. 습작을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어느 날 문득 나쁜 남자가 그리워졌다고 할까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서 방만해져 있는 제 모습이 싫었어요. 직장을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나 기업 사보 만드는 일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난 소설은 여전한 매력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오랜 사회생활로 왜곡된 자아가 제 모습을 찾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일과 같았다고 한다. 1년 전부터는 생계를 위해 드문드문 하던 일도 그만 뒀다. 상을 받거나 누군가 가능성을 발견해줬기 때문이 아니다. “소설을 쓸수록 그 전의 제 모습은 발이 허공에 떠다니는 거짓말쟁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만이 저를 땅으로 내려오게 해요. 그래서 계속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어요.”
당선작인 ‘얼룩, 주머니, 수염’은 이씨가 지난해 쓴 다섯 편의 소설 중 하나로, 내심 자신의 등단작이 되길 바랐던 작품이다. 그는 신춘문예 응모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 아니라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심사위원들은 신인 작가 특유의 패기나 사회에 대한 분노 같은 걸 기대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소설엔 그런 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거든요. 그냥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고 너무나 쓰고 싶어서 쓴 이야기에요. 그래서 한국일보에 응모했어요. 한국일보라면 이런 것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씨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의 전반부 내내 소설을 피해 다녔던 자신처럼.
“요즘 많이 느끼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 별로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다들 자신에게 많은 게 필요하다고 착각하고 진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요. 제가 결국 소설을 택했듯이 모든 사람에게 소설 같은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마다 진심을 다하면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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