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응모작 142편은 특정한 시류나 유행을 따르지 않은, 자기 개성이 분명한 좋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양한 주제의식을 접한 것은 심사위원들에게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한결의 ‘정말 조금 그래요…’, 신유섭의 ‘폭우’, 박정규의 ‘와룡의 꿈’, 박교탁의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이다.
‘정말 조금 그래요…’는 화장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극중 배경으로 설정해 현 세태를 압축하는 작품이다. 문장을 상당히 잘 쓰고 극의 전체적인 구성력도 좋았지만 소재면에서 참신성이 떨어진 점이 아쉬웠다.
‘폭우’는 아파트, 사무실 등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소재의 참신성이 떨어지지 않은 좋은 작품이다. 특히 인간의 내면과 심리적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엄습한 불안과 공포를 포착해낸 점이 훌륭했다. 다만 모호한 결말이 다소 아쉬운 작품이다.
‘와룡의 꿈’은 이번 신춘문예 응모작 중 단연 돋보이는 구성과 주제의식을 갖춘 작품이다. 우선 극의 배경과 소재가 중국의 삼국지연의다. 사마휘를 주인공으로 시종일관 뜬 구름 잡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바로 그 점이 전형적인 희곡 전개에 익숙한 심사위원들의 허를 찔렀다. 극의 전체적인 구성이 장자의 호전몽을 연상시키는 구조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한국 창작극의 영역을 넓혔다고 평가할 작품이다. 다만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연극 무대로 꾸미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당선작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는 전형적인 한국 창작극이다. 극적 공간으로 설정한 재래식 화장실부터 한국적인 해학과 골격을 갖추고 시작하는 작품이다. 변소귀신(어머니), 노인, 아들, 며느리, 손녀 등 4대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과거와 동시대를 버무렸다. 소재의 참신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말을 다루는 솜씨나 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는 솜씨가 훌륭했다. 특히 바로 무대에 올릴 정도의 공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본심에 오른 4편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한국 희곡이 예전보다 건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복잡하고 암울한 현실에도 작가들의 작가정신이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연극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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