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해양실크로드 탐험대 지난 10월 혜초루트 재조명
17일 오후 7시(현지시각) 인도 바라나시 갠지즈강 옆 제단에서는 수십 갈래의 하얀 연기가 밤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힌두교 제사장인 브라만들이 갠지즈강의 여신에게 바치는 종교의식이었다. 하얀색 상의에 노란색 하의, 어깨띠를 두른 10여 명의 브라만들 주위로는 인도 전역에서 온 순례객들과 외국인 관광객 수천 명이 계단과 강 위에 띄워놓은 수백 척의 쪽배에 앉아 장엄한 의식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이 불거나 장대비가 와도 무려 3,000년이나 날마다 이어져 온 의식이다. 720년대 20대 남짓한 나이로 인도 땅을 밟은 청년 혜초(慧超, 704∼787)도 이 의식을 보며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해서 번뇌했을 것이다. 이날 힌두 의식을 본 권상필(57ㆍ대구 수성구)씨는 “인천발 델리행 비행기를 9시간 타고, 4시간 비자 수속 밟은 후 3시간반이나 연착된 인도 국내선을 타고 바라나시까지 온 피로가 한번에 사라졌다”며 “과연 인도는 종교의 나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실크로드 개척자인 혜초 스님의 구도 길을 따라 밟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 해양실크로드탐험대가 10월 혜초 루트인 인도 땅을 밟았고, 우리나라 관광객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혜초에 자극받은 인도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등 혜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상승 무드를 타고 있다.
혜초가 신라를 떠난 것은 열 여섯살인 720년. 중국 광저우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를 스승으로 모신 그는 723년쯤 인도에서 4년 정도 다니면서 바라나시를 밟았다고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서 저술했다. 혜초가 인도 여행 중 들린 곳 중 한 곳이 바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가장 먼저 설법한 이곳 바라나시의 사르나트, 즉 녹야원이다. 17일 녹야원에는 중국의 불교신도 200여 명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갠지즈강을 그가 빼놓았을 리는 없다. 힌두교도들이 죽기 전에 한번은 목욕하고 물을 마셔야 한다는 갠지즈강은 그에게도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18일 새벽 5시 다시 찾은 갠지즈강에는 목욕하러 온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힌두교도들이 물소, 개들과 함께 길가에서 자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도 새벽잠을 깨고 있었다. 쪽배를 타고 강을 내려가보니 24시간 운영 중인 화장터에는 두 구의 시신이 강가 장작불 위에 타고 있었다. 이 재들은 강에 뿌려진다.
지난해 경주∼터키 이스탄불 구간의 실크로드 육로를 누볐던 경북도 실크로드탐험대는 올 10월 콜카타∼파트나∼부다가야∼바라나시∼나시크∼뭄바이 구간을 열흘간 대장정하며 혜초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혜초는 21세기 인도인의 미래도 바꿔놓고 있었다. 금관가야 시조인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188)의 만남에 감명받았다는 노사드 알람(31)씨는 혜초의 인도 구법기를 신문기사로 보고는 전자공학을 팽개치고 네루대 한국어과에서 우리말을 전공했다고 했다. 알람씨는 “8세기 한국의 스님이 인도를 둘러보고 남긴 왕오천축국전은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며 “2,000년 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인도와 한국이 좋은 이웃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바라나시(인도)= 글ㆍ사진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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