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협박에 영화 상영 못하면 다큐멘터리·뉴스는 어떻게 하나"
움츠린 할리우드 북돋기 의도도, 중·러 힘 커지자 北이 단골 소재로
미국이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소니픽처스) 해킹과 테러 위협에 예상 밖의 강도 높은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이를 침해 받을 수 없는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표 문화산업 중 하나인 영화가 자칫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소니픽처스의 ‘인터뷰’ 개봉 취소와 관련해 “실수”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오바마는 “누가 협박을 해서 풍자영화의 상영을 막는다면 다큐멘터리나 뉴스는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보라”며 “그건 미국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틀 뒤 CNN 인터뷰에서도 “CNN은 북한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왔는데 CNN의 사이버망에 구멍이 뚫린다고 북한 보도를 하지 않는 게 좋겠는가”라며 “다른 나라의 독재자가 사이버로 배급망과 상품을 파괴하고 그 결과 우리 스스로를 검열하는 선례를 만든 게 문제”라고 소니픽처스의 잘못을 지적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소니픽처스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화씨 9/11’ 등을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경애하는 소니 해커들이여, 이제 당신들이 할리우드를 운영하는군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현실을 비꼬았다. TV 시리즈 ‘뉴스룸’ 등으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에런 소킨은 “테러리스트들의 소원이 충만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강경 대응은 할리우드 성장사가 외부의 검열 시도와 지속적으로 싸워온 역사라는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할리우드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관람연령 등급도 자체 결정하고 있다. 소니 해킹 이후 외부 세력에 의해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는 사례가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이번 사태를 보며 알아서 꼬리 내리는 자기검열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사 루 리젠시가 북한을 소재로 한 ‘평양’의 제작을 취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할리우드에서 ‘악과의 전쟁’은 최소한의 흥행이 보장되는 단골 주제다. 그런 영화에서 악의 국가로 묘사하기 가장 좋은 소재가 북한이다. 폐쇄적인데다 지도자들의 상식 밖 행보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과거 미국을 위협하는 적으로 주로 묘사됐던 중국과 러시아는 영화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이 국가를 소재로 한 영화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진 점도 작용했다. 적대국의 미국 마을 침공과 대응을 그린 2011년 영화 ‘레드 던’에서 당초 중국이던 적대국이 제작 후반에 북한으로 바뀐 일도 있었다.
아무리 적대국이더라도 그 나라 지도자 암살까지 다루는 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니픽처스가 ‘인터뷰’ 제작을 밀어부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특정 국가의 실존 지도자 암살은 다루지 않는다는 할리우드의 오랜 불문율을 깼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니픽처스 일본 본사에서는 경영만 챙기지 영화 내용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깨고 일본인 최고경영자 히라이 가즈오가 김정은 암살 장면에 우려를 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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