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으로 발표한 군인ㆍ사학연금 개혁 추진일정을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없던 일로 하자며 통사정하는 볼썽 사나운 일이 벌어졌다. 그제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에서 기재부는 공무원연금 외에 군인ㆍ사학연금 개혁에도 착수해 내년 10월과 6월에 각각 사회적 의견수렴을 거친 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새누리당부터 당장 “정부가 (여당과)협의조차 없이 중대 사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강력 반발하자 허겁지겁 봉합에 나선 것이다.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크게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기금과 재정 형편을 감안할 때 군인ㆍ사학연금 역시 개혁해야 할 대상인 건 분명하다. 공무원연금과 마찬가지로 ‘덜 내고 더 받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인 군인연금은 이미 1973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매년 1조원 이상의 국가재정을 적자보전금으로 삼키고 있다. 사학연금 역시 지금대로라면 2033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천문학적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만큼 선제적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정부가 지난 상반기 공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로 이미 공무원연금에 군인ㆍ사학연금을 더한 3대 직역연금 개혁을 못 박아 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기재부가 내년에 군인ㆍ사학연금 개혁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의견수렴 및 개혁안을 내겠다는 것 자체를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국회 입법논의나 향후 선거일정 등을 감안할 때, 내년에 개혁안조차 마련하지 못하면 이번 정부에서는 군인ㆍ사학연금 개혁을 매듭짓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준비를 독려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에서조차 “정부 뒤치다꺼리하다 골병 들게 생겼다”는 반발을 사게 된 건 온전히 정부의 소통 부족과 일방통행, 또는 무능 탓이다.
정책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이다. 대강이 유지된다면 상황과 여건에 따라 구체적 내용과 완급은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공감을 다지는 필수 절차와 과정조차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다간 정책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을 넘어 전체를 그르치는 파국을 맞기 십상이다. 이번 사단이야 일단 정부ㆍ여당 내의 국면이니 그렇다 쳐도, 향후 구조개혁과 관련해 야권과 이해 당사자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 단계에서도 이런 식이 반복되면 곤란하다. ‘욕 먹을 각오로 개혁하겠다’는 게 구조개혁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의지이지만, 소통 없는 일방통행 식으론 개혁은 못하고 욕만 먹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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