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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날 품어준다면 北실상 알리는 작가 되고 싶어"

입력
2014.12.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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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교 출신 탈북자 홍모씨

우여곡절 끝 남한에 도착했지만 간첩 혐의로 1년 넘게 수감

"국정원 회유·협박으로 간첩 돼"

민변 등 도움 얻어 1심서 무죄, 내일 항소심 첫 공판

북한 보위사령부(보위사) 직파간첩으로 기소됐다 지난 9월 5일 1심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난 탈북자 홍모(41)씨는 요즘 항소심 준비에 여념이 없다. 24일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21일 만난 홍씨는 “소송 준비를 통해 남한에서의 삶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지난 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도망쳐 나왔지만 국정원에서 100여일 간 독방에 갇혀 조사를 받았고 검찰에 넘겨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간첩ㆍ특수잠입ㆍ목적수행 등)로 구속돼 재판까지 받아야 했다.

홍씨는 1심 판결 직후 풀려났지만 정착자금도 지원받지 못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마련해준 서울의 거처에 머물고 있는 그는 1심 무죄를 이끌었던 수원의 박준영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남한에서 사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나가고 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타는 법, 컴퓨터 한글프로그램 사용법 등도 모두 변호사 사무실에서 배웠다. 박 변호사는 “직파 간첩이 어떻게 운전도 할 줄 모르냐”며 “조작의 대상을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고 말했다.

홍씨는 “생계를 위해 탈북 브로커를 하다 찍혀 도망 나왔는데 남한에서 재판을 받게 될지 몰랐다”며 웃었다.

홍씨는 담배를 건네며‘담뱃값이라도 하라’는 국정원 조사관의 말에 처음 허위 자백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국정원 조사를 받으며 그는 틀을 갖춘 간첩이 됐다. “유도하는 대로 진술을 잘했다 싶으면 수육, 순대 등의 안주에 술과 담배를 주더라. 술 기운에 더 크게(부풀려) 말했었다.”원하는 답이 아닐 땐 욕설을 하며 책상을 발로 차 위협했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벌을 줘 없는 말을 꾸며대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홍씨는 북한 보위사에서 탈북자 단체 동향을 파악하고 국정원 정보원 신원을 파악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직파된 간첩이다. 홍씨는 “심문관(조사관)들이 하루 종일 같은 말만 물어보니 미칠 것 같았다”며 “인정하면 집에다 돈도 보내고, 북의 가족들도 안전하게 데려와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보위사 정보원이 돼 주고 나니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가 국정원과 검찰에서의 진술을 부인하기로 한 것은 기소된 뒤 서울구치소에서 읽은 한 신문에 자신이 간첩으로 기사화돼 있는 것이 계기가 됐다. “국정원은 북에 있는 가족들의 신변 때문에 언론에 안 내보내기로 약속했었다. 그때서야 속았다는 걸 알았다.”

홍씨는 곧바로 변호사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몇몇 국선 변호사를 거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손을 잡았다. 민변은 아니지만, 박 변호사도 합류해 1심에서 그를 무죄로 이끌었다.

홍씨는 항소심 등에서도 무죄가 나와 대한민국이 자신을 품어준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북의 주민에게 올바로 전해 두 나라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갖도록 할 겁니다.” 그는 “남한에 와보니 일하면 돈을 준다는 것 하나는 정말 좋다”며 “열심히 일해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꼭 데려오고 싶다”고도 했다.

한편 국정원과 검찰은 홍씨의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고 있다. 회유나 강압수사 등이 없었고 증거가 있어 수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1심 판결 뒤 “지나친 형식논리로 증거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고 재판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유명식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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