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길 2층 가정집을 성당 삼아
신자들과 밥상 함께하며 희망 심어 줘
봉제조합과 재활용품ㆍ비누 가게 등
일자리 만들고 자활 돕는 사업 추진
"성탄의 진짜 선물은 나눔입니다"
성당 한 켠에 있는 밥통에서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 오른다. “신부님, 밥 냄새 나요.” 까르르 신자들이 웃는다. 구수하고도 달큰한 밥 냄새를 맡으며 미사를 보는 곳, ‘솔샘공동체’다. 이곳의 오랜 ‘밥 당번’은 사제다. 지난해 8월 부임해온 이강서(52ㆍ베드로) 신부다.
솔샘공동체의 정식 명칭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삼양동 선교본당이다. “빈곤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새로운 성당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는 게 이 신부의 설명이다. 선교본당이 들어선 곳은 다섯 군데. 삼양동 말고도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장위동에 있다. 이 가운데 삼양동 선교본당이 가장 오래 됐다. 솔샘은 북한산 기슭이라 예부터 소나무가 많았다고 불려온 이름이다.
솔샘공동체의 예수 정신은 ‘밥’이다. 밥 못 먹는 이들에게 밥 지을 힘과 희망을 주는 곳, 그래서 이 곳은 함께 밥을 먹는 ‘밥 공동체’다. “우리는 밥상 나눔을 중시해요. 이곳에 선교본당이 들어섰을 때부터 그랬죠. 지금도 한 달에 한번 주일에 의무적으로 밥을 먹어요.”
미사가 끝나면 다섯 개의 상을 펼치고 30~40명의 신자들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함께 한다. 밥과 국은 신부와 수녀들이 만들고, 반찬은 신자들이 싸온 것들이다.
신앙과 밥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수사적인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가 곧 한 식구라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서로 간섭하는 관계가 식구잖아요.”
솔샘공동체의 식구들은 서로의 밥을 챙기고, 다음 끼니를 걱정해준다. 사제복, 수녀복 등을 만드는 봉제협동조합 ‘솔샘일터’, 재활용물품 협동조합 매장인 ‘살림’, 유용미생물(EM)로 만든 비누ㆍ세제ㆍ치약 등을 파는 ‘수상한 가게’가 그래서 생겼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들었다. 모두 이 지역의 가난한 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자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터들이다. 솔샘공동체의 현장 사무실인 ‘평화의 집’은 독거 노인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등 나눔의 창구 역할을 한다.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공장 일을 하며 자녀와 시부모 생계를 책임졌던 조상원(54)씨도 공동체의 식구다. 1999년 살림 창업 때 참여했던 그는 4년 전부터는 수상한 가게에서 일한다. 외려 공장에 다닐 때보다 벌이가 적을 때도 있었지만, 조씨는 더 큰 것을 얻었다. “자립할 능력을 키우는 내 일터라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수익이지만 매달 평화의 집의 반찬 나눔을 후원하는 것도 큰 기쁨이죠.” 조씨는 “나도 가난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건 당연하다”며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신부ㆍ수녀님들과 이웃들 역시 나를 도우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강서 신부는 “가난한 이들이 혼자서 현실을 이겨내기란 어렵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공동체”라고 말했다.
솔샘공동체에는 번듯한 성당 건물도, 사제관도 없다. 미아1동 가파른 계단 골목길 빽빽한 가정집 중 2층짜리 건물이 성당이고 사제관이다. 사제와 수도자들도 공동체의 식구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솔샘공동체를 보노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떠오른다. 그렇기에 솔샘일터에서 만든 장백의(長白衣ㆍ제의 안에 입는 흰 옷)를 방한 중 교황에게 봉헌한 건 뜻 깊은 일이었다. 방한 미사 때 입지는 않았지만, 교황은 이들의 수고와 기도가 깃든 장백의를 바티칸으로 가져갔다. 솔샘일터의 조합원이자 노동자인 장영오(53)씨는 “21년 간 수도 없이 장백의를 지었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황이시기에 더 각별한 마음으로 건강을 기원하며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복에서 응용한 깃, 아랫단과 소매단, 옆선에 금실로 수놓은 무궁화 124송이로 한국의 멋을 살렸다. 정씨는 “디자인과 봉제를 섬세하게 맞추느라 두세 번 수정을 거치고 수를 놓는 작업은 전문업체에 의뢰했다”며 “보통의 장백의와 다른 깃 봉제에 다림질까지도 정성을 들여 석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사정, 솔샘공동체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솔샘공동체는 더 나누기로 했다. 800만원 남짓한 이월금을 생계가 어려워 임대료를 장기 체납한 임대아파트 열 다섯 가구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 신부는 “그들의 빈곤을 해결해주기는 역부족이겠지만 세상에 당신들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는 위안의 고리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다가오는 성탄절도 예수의 사랑을 나누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가 오셨다는 성탄의 기쁜 소식은 값비싼 선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내가 정말 아끼는 것을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웃과 나눌 때 느끼는 것 아닐까요?”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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