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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대북관·정파 패권주의 매몰 땐 설 땅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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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대북관·정파 패권주의 매몰 땐 설 땅 없다

입력
2014.12.2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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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2008년 일심회 제명안에 NL 반대 부결, PD 탈당으로 분당

북핵·3대 세습에도 NL은 침묵 일관, 대중과의 괴리감·고립 자초

통합진보당의 해산 이후 진보정치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끊어야 할 고리는 종북논란과 파벌싸움이다.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북한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양대 파벌이였던 자주파(NL)와 평등파(PD) 간 갈등을 반복했고 이는 다수 정파의 패권주의와 결합되면서 당내 민주주의까지 가로막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대 총선에 앞서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세력이 통합해 통진당을 창당하면서 대중의 기대를 받았으나, 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과 야권연대 여론조사(ARS)경선 조작에서 드러난 자주파(경기동부연합)의 행태는 대중과의 괴리감만 키웠고 이후 진보정치의 고립을 자초했다.

시대착오적 대북관이 키운 종북 논란

‘종북’이란 단어가 본격 사용된 것은 2006년 일심회(간첩단) 사건 때부터다. 대법원은 2007년 12월 최기영 당시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이 북한과 접촉해 당원 성향을 분석한 자료 등을 전달한 혐의로 유죄를 확정했다. 민노당은 2008년 2월 임시 전당대회에 이들에 대한 제명안을 상정했지만 다수파인 자주파 반대로 부결됐다. 국가보안법과 분단의 희생자라는 게 자주파 논리였다. 이에 노회찬 조승수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상 현재 정의당) 등 평등파 인사들은 “종북주의를 확인했다”고 반발하며 탈당하면서 제1차 분당사태가 벌어졌다.

자주파의 시대 착오적 대북관을 보여주는 사례는 일심회 사건뿐이 아니다. 자주파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3대 세습 논란 등이 불거질 때마다 침묵했다. 2005년 2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지만 민노당 논평에는 원론적인 비판조차 담기지 않았다. 자주파가 당 최고위에서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2006년 10월 북한이 강행한 핵실험에 대해서도 자주파를 의식해 “미국의 적대정책과 북미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북한 핵실험으로 이어진 것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2010년 10월 북한의 3대 세습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우위영 대변인은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을 뿐이다.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민노당 후보는 우리 정부를 가리켜 “남쪽 정부”라고 말해 논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지난해 공개된 이석기 전 의원의 ‘지하혁명조직(RO) 녹취록’은 통진당에 치명타였다. 이 전 의원이 RO 회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 시 국가기간시설 파괴와 무기 제조ㆍ탈취, 통신교란 등을 언급한 사실이 밝혀졌으나, 통진당이 이 전 의원을 두둔하면서 특정 정파를 넘어 당 전체가 ‘종북 프레임’을 벗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력획득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파벌싸움

제도권에 편입된 민노당이 10여 년간 분열과 통합을 반복한 배경에는 치열한 파벌싸움이 자리하고 있다. 민노당 창당 주도세력은 당초 평등파였다. 하지만 2001년 9월 자주파의 최대조직인 전국연합이 민노당 입당을 결정하고 용산지구당 위원장을 접수한 ‘용산 사건’ 이후 자주파가 서서히 당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천연합(자주파) 당원들은 인천에 있는 전셋집을 빼서 용산으로 이사를 가거나 수십 명의 당원들이 한 집에 주소지를 옮기는 수법으로 용산 지구당 내 모든 당직을 장악했다. 이처럼 대대적인 위장전입과 당비대납, 유령당원 등을 통해 인천과 광주,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당 조직을 접수했고, 2006년 1월 당 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했다.

자주파가 주축인 민노당과 탈당파였던 평등파, 새롭게 합류한 국민참여계가 만든 통진당에서도 자주파의 패권주의는 여전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과 야권 후보단일화(서울 관악을) 경선에서 부정이 드러나면서 진보진영 내에서만 알려졌던 자주파(경기동부연합) 패권주의의 맨 얼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비례대표 경선에서도 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평등파와 국민참여계는 진상조사를 통해 소스코드 열람ㆍ대리투표 등의 총체적 부정을 있었음을 발표했지만, 자주파는 “부실은 있었지만 부정은 없었다”고 맞서면서 반목을 거듭했다. 결국 2012년 5월 비례대표 경선부정과 관련한 안건을 당 중앙위에 상정하려 하자 자주파 당원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키면서 제2차 분당을 맞았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다수 국민들은 헌재 결정 이전에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와 진보정당의 생명인 도덕성을 외면한 통진당에 등을 돌렸다 종북 이념과 패권을 내포한 파벌싸움을 단절하는 것이 진보진영의 최고 당면 과제가 됐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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