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니 그룹의 미국 자회사 소니 영화사에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은 악몽 그 자체다. 북한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인터뷰’ 소동 탓이다. ‘평화의 수호자들’을 자처하는 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으로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25일 크리스마스에 맞췄던 개봉 취소로 인한 손해가 막대한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문화예술계로부터는 테러 위협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미국이 그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을 천명하고 나서 국제정치적 파장도 일파만파다.
▦ AFP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소니 영화사가 입게 될 손실액을 약 5억달러로 추산했다. 제작비와 유통비용 7,500만달러, 입장료 손실 수억달러, 해킹으로 망가진 컴퓨터시스템 복구비 수천만달러, 개인정보 유출 보상비용 등을 포함해서다. 수천명의 직원 신상 정보와 고급 간부들의 급여 내역, 관리 중인 수퍼스타들의 여행 암호명이 공개됐고, 내용을 해킹 당한 미개봉 신작 영화도 5편이나 된다고 한다. 영화사 공동사장 에이미 파스칼의 이메일 내용 중 인종 편견적인 농담 등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 소니 영화사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국가 수반의 암살을, 그것도 조롱하고 비하하는 영화 제작을 결정한 책임자가 우선 희생양이 될 개연성이 크다. 소니 본사는 사전에 영화 내용 수정을 요구했고, 미 국토안보부도 이 영화로 미국과 북한관계가 악화될 수 있음을 사전에 경고했다고 한다. 소니 영화사의 매각 설도 파다하다. 영화사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인데, 안이한 판단에 따른 자업자득인 셈이다.
▦ 이번 사태는 창작에 있어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의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2012년 9월 9ㆍ11테러 11주년 즈음해 이슬람 예언자 모하메드를 모욕하는 미국 영화(Innocence of Muslims)가 이슬람권에 거센 분노를 촉발시켰다. 리비아 수단 등지의 미국, 영국 대사관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불탔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외에도 상업적 목적 또는 종교ㆍ문화적 편견에 입각한 창작이 지구촌의 갈등과 증오를 확산시키는 사례는 많다. 평화와 생명을 위협하는 표현의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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