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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르토의 <연극과 그 이중>

입력
2014.1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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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연극론’을 읽었다. 출판사 현대미학사가 앙토넹 아트토의 저서 ‘연극과 그 이중’을 완역한 것이다. 시와 연극을 공부하던 대학시절 앙토넹 아르토에 대한 입소문은 왕성했다. 이 책을 작정하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책 중 나를 변화시킨 중요한 책이 되었다. 모종의 에너지를 가진 채 내가 빈번하게 자주 펼쳐보는 책이다. 1932년에서 1938년 사이에 이 책의 원고들은 대부분 쓰여졌다. 이 책이 요즘에 출간된다면 시쳇말로 ‘폭망’할 가능성이 크다. 책의 가치나 가격을 비교 측량해주는 숍봇(SHOPBOT)이라는 지능형 에이전트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난해서로 낙인 찍힐 것이다. 아르토는 당대의 연극풍토에 대항마를 준비해 놓고도 이 책으로 인해 무참한 비평과 외면의 시절을 감수해야 했다. 이 책의 내용은 어쩌면 그 내용에 대한 서문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서문에서 분명히 밝힌다. ‘삶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일 때, 우리는 결코 문명과 문화에 관해 삶에 대해서 언급해 본 적이 없었다.’고.

아르토는 기존의 연극의 정공법으로부터 서구 연극사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던 자신의 무대론을 펼친다. 아르토는 브레이트식 연극의 반대편에서 서사극과 교훈의 메시지를 거세하고 공간이 드러내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무대에 이식시키고자 했다. 아르토는 자신이 실제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다룬 ‘보나파르트’의 배우가 되어도 보았으며, 자신이 만든 극단 ‘자리’를 통해 야심적으로 공연했던 ‘첸치카’의 일면에서도 우리는 그의 독특한 마술적 감정들이 우리의 내부에 마련된 특별한 조직들을 건드린다는 것을 체험한다. 물론 우리는 그의 공연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가 꿈꾸던 무대의 형이상학을 엿볼 수는 있다.

아르토가 말한 연극의 이중성을 난해함으로 치부해버리는 세계에서 아르토는 자신을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에 심각한 난색을 표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 모른다. 아르토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는 세계에 가서 작명가로 활동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현실의 호흡을 무대에 올려놓기 위해선 새로운 발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모든 연극의 밑바탕에 깔린 연관을 하나씩 벗어날 때에야 아르토는 진정한 연극의 정신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연극이 새롭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피로 공간을 채우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극은 하나의 사실이 아닌 분명한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정신병동 안에서 그는 이 원고들을 다듬었다.

아르토가 말한 연극의 잔혹성은 우리를 바깥으로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우리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현실 사이의 이중성을 극복하려는 진정한 움직임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내면의 원초성에 깔린 공포를 마주치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공동체로 구성하고 있는 맥락들과의 불길한 사건을 드러내는 ‘연관’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무대의 현상은 한 순간도 멈춤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다”고.

삶과 운명의 이중적 궤도를 하나의 신경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극복하려는 자의 형이상학은 혁명에 가깝고 새로운 잔혹이기까지 하다. 아르토가 방법적 도구들로 사용했던 연금술적 요소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그의 극을 바라보는 그러한 다중초점이다. 하나의 눈으로 여러 개의 눈을 동시에 무대에 만들어 보려는 이 연출가의 야심과 동력은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를 세계 연극사에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구연극이 충실히 지탱해온 서사의 힘에서 이러한 시적 에너지는 불길하거나 무질서적으로만 용인되는 순간도 있다.

아르토는 미치광이로 생을 끝내버린 한 연극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삶과 무대라는 이 이중의 억압을 자신의 로고스와 총체적 감각을 사용해서 극복하고자 누구보다 노력했던 한 인간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줄거리보다 공간의 시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에게 세상의 의견은 너무나 불친절했다. 그는 언어와 불화를 선언했고 자신의 직관과 순수성과 교통하며 이 책에게 하나의 인격을 부여하려고 했다.

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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