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 회오리에 휩싸인 연말 정국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이라는 충격파가 덮쳤다. 두 개의 사안이 얽혀 더욱 혼란으로 빠져들지 아니면 정당해산 정국으로의 국면전환이 이뤄질지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민주 헌정사와 정당정치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 틀림 없다.
유일하게 통진당 해산에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지적대로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선거 등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진당 해산은 어떤 형식으로든 정당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정당정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비용을 치르게 할 우려가 높다. 다만 이를 계기로 보수ㆍ진보 진영간 소모적 정쟁을 가열시키고 중요 고비마다 진보 진영의 발목을 잡아온 종북 논란이 정리된다면 진보 정치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헌재 결정에 대해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며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전폭적 환영을 표시했다. 기세를 몰아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으로 초래된 수세적 국면의 전환으로 이어가려는 내심도 엿보인다. 그러나 헌재 결정을 야권과 진보 진영에 대한 이념공세 강화의 소재로 활용하다가는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헌재가 정당해산 결정 시기를 앞당긴 배경 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도 헌재 결정에 과민하게 대응해 종북 논란과 소모적인 이념 대결을 촉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정치 진영은 이번 헌재 결정으로 새롭게 진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넓은 의미에서 진보 진영에 속하는 새정치연합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종북주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진보 진영 내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종북이라는 용어 자체가 진보세력 내부 노선갈등에서 나왔다. 북한체제의 노선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일부 세력이 북한의 노선과 분명한 선을 긋지 않음으로써 진보세력의 확장과 발전을 가로막아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총선 직후 통진당에서 정의당이 분열해 나온 것도 북 체제에 대한 인식차이가 주요 원인이었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종북 문제가 보다 분명하게 정리가 된다면 진보 진영의 통합, 나아가 야권 전반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여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한 채 좀처럼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야권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헌정사의 불행인 이번 결정이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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