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러시아·이란·미국 등 제각각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동결 결정이 촉발한 '저유가 전쟁'으로 국제유가는 올 초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이란·미국 등 관련국은 저마다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달라 이번 전쟁의 결말은 안갯속이다.
다만, 각국 고위급 관계자들이 내놓는 말을 살펴보면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사우디는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간) OPEC 총회 이후 시종일관 '감산불가' 입장을 밝혀왔다.
사우디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18일 관영 SPA통신과 인터뷰에서 "사우디나 OPEC의 시장 점유율 하락을 가져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미국과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이 산유량을 줄이지 않는 한 자신들만 손해를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우디가 미국과 함께 '저유가 전쟁'으로 러시아와 이란·베네수엘라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에 대해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반드시 허위로 드러날 것"이라며 부인했다.
유가를 자유 시장경제에 맡길 뿐이지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주장이다.
앞서 알-나이미 장관은 지난 10일 "시장에서 모든 원자재 가격은 오르고 내리기 마련"이라며 "우리가 왜 감산해야만 하느냐"라고 거듭 반문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하일 알-마즈루에이 에너지 장관도 "OPEC에게만 감산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시장이 스스로 안정을 되찾을 것이기에 유가 방어를 위한 특별총회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가 폭락으로 재정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입장이 다르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10일 내각회의에서 "유가 하락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특정 국가가 정치적으로 계산한 음모"라며 사우디와 미국을 겨냥했다.
호세인 압돌라히얀 이란 외무차관도 "사우디의 저유가 전략은 중동 산유국이 손해 보는 대신 서방에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부도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와 미국을 비난할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원유수출이 사실상 거의 유일한 외화 획득 수단인 베네수엘라는 국제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상태인 'CCC'로 낮춰졌고, 12개월 안에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직면할 가능성이 97%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공정한 유가는 배럴당 약 100달러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유가를 끌어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다.
러시아는 저유가 상황이 버틸만하다며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8일 연말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경제는 저유가에 어떻게든 적응할 것이며 유가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떨어지더라도 결국은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셰일오일사들은 '시장가격'에 따른다는 분위기다. 미 정부는 최근 저유가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셰일오일사들은 생산원가가 배럴당 40달러∼120달러로 다양하다 보니 일단 신규투자를 줄이고, 유가가 생산원가보다도 떨어지는 곳부터 가동을 멈췄다가 오르면 다시 생산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석유 메이저사인 코너코필립스는 "내년 설비투자 비용을 올해보다 20% 줄이기로 했다"고 발표했고, 쉐브론사도 마찬가지 입장을 내놨다.
이처럼 유가 하락을 둘러싼 각국의 계산법이 다르기에 이번 '저유가 전쟁'은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뿐, 종전시점과 승리자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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