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ㆍ376쪽ㆍ1만7,000원
귀화 한국인 박노자 교수
세월호ㆍ쌍용차 사태 등 원인으로
천민자본주의와 비호하는 국가 비판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혹한에 70m 굴뚝 위로 올라가 농성을 해야 하는 사회다. 돈 때문에 생명을, 그것도 수백 명의 생명을 배 위의 담보로 잡는 사회이니 더러운 게 맞다. “드럽고 치사한 나라 살기 싫어 죽으려 한다”며 자살을 시도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유서가 틀렸다고 부인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 한국인’으로 불리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는 오늘을 ‘비열한 시대’라고 명명했다. 이 좌파 혁명주의자가 드러내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치부가 이 책에 담겼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악을 악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책의 의도를 서둘러 밝힌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올렸던 글을 모은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빠질 리 없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이라는 국가를 ‘부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순진함의 극치”라고 일갈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의 현주소에 “우리의 대한민국이 이런 정도였느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탄했던가. 박 교수의 속내는 이렇다.
“만약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지만 미흡해 실패로 돌아갔다면 그 표현은 맞다. 하지만 이 국가의 존재 목적 자체가 자국민 보호와 무관하다면 전혀 부실한 것이 아니다.” 국가와 지배자가 주는 허상을 믿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를 착취하면서 통제하는 사람을 무슨 국민 안전 책임자로 착각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세월호에서 어린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그래서 그가 보기에 “지배층의 모든 요구를 총체적으로 집약해놓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범인’은 결국은 천민 자본주의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한국형 자본주의의 토양에서 부득이하게 일어나게 되어 있는 ‘사회적 대량 타살’의 전형”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무한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사실이야 말로 그 주된 이유”라며 “대한민국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청해진해운과 같은 살인 기업의 해결사”라고 주장한다.
박 교수에게 목하 대한민국은 ‘폭력의 시대’이기도 하다. 과거 국가가 자행했던 형이하학적 폭력보다 오히려 더 다양하고 세련됐다. 긴급 구조를 위한 인적ㆍ기술적 자원을 독점한 국가가 구조를 하지 않아 노동자와 그 자녀들이 수장되게 한 세월호 참사, 합법적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돼 가슴뼈 골절 등 중상을 입은 송경동 시인, 반대 활동가와 주민 589명이 기소되고 3억 여원의 벌금 폭탄까지 맞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가 그 예다.
이런 시대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박 교수는 “국가가 폭력을 손쉽게 행사하는 이유는 우리의 망각에 있다”며 “본격적으로 국가 폭력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자세를 말과 행동으로 집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글 곳곳에 혁명의 똬리를 던져놨다. “세월호에 타고 있는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대다수의 서민에게 지금의 한국은 너무나 위험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아무런 투쟁을 하지 않는 것은 역사 앞에서 커다란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죽어가는 사람의 수만 늘어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무기력도 사회적 타살의 원인이다.”
그가 말하는 혁명이란,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너와 내가 연결돼있다는 것, 너와 내가 결코 사회 안에서 다른 존재가 아님을 직시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박 교수는 “이 세상에 남이라는 것이 없듯 남의 아픔도 없다”며 “자비심이라는 심층적 집단 심성이야 말로 혁명적 실천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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